행정중심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세종시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여당에서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 불이 붙은데 이어 세종시와 인접한 대전시가 ‘대전-세종 통합’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대전시장은 “행정수도의 실질적 완성과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모델을 만들기 위한 대전과 세종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 시장은 지난 23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미 공동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전과 세종은 운명공동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청와대와 국회, 정부 부처 모두 세종특별자치시로 내려가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나온 제안이다.
그는 이어 “현재 행정수도 완성의 당위성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을 다 할 것”이라며 “대전과 세종이 통합하면 인구 200만 이상의 광역도시로 행정수도의 기반이 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끄는 중부권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충남 연기군을 중심으로 공주시와 충북 청원군 일부 지역을 통합해 만든 세종시를 대전시와 합치자는 게 허 시장의 제안이다. 하지만 허 시장은 “앞으로 필요한 연구와 논의를 시작하겠다”고만 말했을 뿐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대전-세종 통합 제안에 세종시는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당 소속인 이춘희 세종시장은 “공동생활권인 세종과 대전이 함께 협력해 발전하자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논의나 합의가 없었던 (대전-세종) 행정구역 통합을 제안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전했다.
과거 세종시의 전신인 연기군을 관할하던 충남도의 반응도 대전시의 제안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충남도 고위관계자는 “(대전-세종 통합)이런 제안을 한 대전시의 진의를 파악해봐야 한다”면서 “행정구역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도 안되는 제안이다”라고 말했다.
세종시민들은 난데 없는 통합 발언이 ‘뜬금 없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김모(49·세종시 도담동)씨는 “여당의 행정수도 이전 폭탄 발언으로 세종지역 집값 폭등을 부추겼는데 대전-세종 통합은 또 무슨 얘기냐”면서 “쌩뚱맞은 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세종지역 아파트 부동산 시장은 여당의 행정수도 이전 발언 이후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도 최소 1억원 이상 급등하고 있는 상태다.
세종시 새롬동 새뜸6단지 힐스테이트메이저시티 84㎡(전용면적)의 경우 지난 4일 8억65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는데 현재는 최고 10억원대 호가가 형성돼 있다. 송모(37·세종시 다정동)씨는 “수도권 집값 잡겠다고 행정수도 이전을 내밀었다면 혼란이 없도록 세부적인 계획을 내놔야 했다”면서 “대전에서 세종시를 통합하겠다는 것도 아무런 계획이나 기대효과 연구도 없이 말로 내지르면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정의당 세종시당은 논평을 내고 “양 도시의 경쟁적 협력을 통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과 세종의 행정 통합이라는 허황된 안을 제시해 민심을 어지럽힌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 위기를 겪고 있는 대전시가 위기 극복을 위해 세종시 통합을 제안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동안 세종시는 충청권 인구의 블랙홀로 불렸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세종시 출범 취지와 달리 수도권 인구 분산보다 충청지역 인구를 흡수하는 효과가 컸다.
2015년부터 2019년 9월까지 세종시로 전입한 인구 27만7594명을 분석한 결과 수도권에서 들어온 전입자는 7만2317명(26%)에 불과했다. 전입자 10만3937명(37.4%)은 대전에서, 3만2299명(11.6%)은 충남에서, 3만476명(11%)은 충북에서 세종시로 이주한 인구였다. 충청권에서 세종시로 이주한 비율만 60%에 해당하는 것이다. 세종시 인구 빨대 효과로 대전시의 인구는 150만명선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말 149만명대로 떨어졌다. 지난달 기준 대전 인구는 147만1040명이다.
하지만 허 시장의 대전-세종 통합 제안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과 세종의 행정구역 통합을 위한 절차와 기대효과에 대한 연구, 충청권 자치단체장은 물론, 정부부처와의 협의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광역지자체 통합 얘기가 나오는 대구·경북은 그동안 통합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면서 "대전시가 특별법으로 특별자치시 지위를 지닌 세종시와 통합을 구상했지만 구체적인 준비는 덜 돼 있는 제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