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천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장이 21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관노 잠자리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덕수 이씨 대종회와 충무공파 종회는 '이순신 장군도 관노(官奴)와 잠자리를 했다'는 주장을 한 네티즌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전문가 분석에 의하면 ‘이순신 관노 잠자리’ 주장은 난중일기에 나오지 않는 허위 글"이라고 했다.

이종천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장은 1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허위 글이 일파만파 유포된 사태에 대해 충무공 후손으로서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자는 국민의 뜻을 받을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그는 "충무공께서 모친상을 당한 상제의 몸으로 백의종군하러 가던 중 여인과 잠자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 보면 관아에 뒷바라지하는 노비가 있는 것은 법에 규정된 일이다. 이런 것만 가지고 잠자리 운운하는 것은 조선시대 제도도 잘 모르는 몰지각한 발언"이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잠을 잤다는 단초를 제공한 문구는 난중일기 탈초본의 1596년 9월 12일 여진(女眞), 9월 14일 여진입(女眞卄), 9월 15일 여진삽(女眞卅)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여진’이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1935년 일본 측이 ‘이순신 장군과 ‘여진’이라는 관기가 성관계를 했다’는 식으로 해석한 적이 있다.

이 종회장은 "여진입, 여진삽은 오독이 분명한 것을 확인했다. 오독을 바로 잡아 잘못 전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이어 "허위 주장과 보도로 인해 충무공의 위상이 크게 실추됐고, 후손들은 뼈저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선조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고통을 주는 일이 더는 없도록 협조해주시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관노라는 말이 난중일기에는 정유년(1597년) 4월 21일자에 딱 한 번 나온다고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 소장은 설명했다. 노 소장은 난중일기 완역본을 낸 이순신 전문가다. 백의종군 처분을 받은 이순신 장군이 모친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녁에 여산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고 했다. '관노와 잠자리를 함께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노비'의 '노(奴)'는 남자 종, '비(婢)'는 여자 종을 뜻한다. 노 소장은 "이 내용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옮긴 것"이라며 "(남자 종을 뜻하는) 관노와 (여자 종을 뜻하는) 관비는 의미가 다르다"고 했다.

이 종회장은 "왜 서울시장이 숨진 데다 충무공을 갖다 대느냐"며 "후손으로서 기가 차고 목이 메어서 말도 잘 안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정정보도를 해달라"고도 했다.

기자회견을 주선한 미래통합당 이명수 의원(충남 아산갑)은 "(20일)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니 문중에서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 수사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이후 조치에 대해서는 별도 협의가 있겠지만, 망언한 측에서 정중한 사과를 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