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일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은행·증권사에 "투자금 전액을 물어주라"고 권고했다. 금감원이 판매사에 투자금 100% 배상을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유는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최대 98% 손실이 난 '불량 상품'인데도 멀쩡한 상품인 것처럼 팔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번 결정에 쓰인 법리(法理)는 판매사가 펀드의 부실 여부를 몰랐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옵티머스펀드처럼 '사기 펀드'를 판매한 회사들이 고객 투자금 전액을 물어줘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라임 100% 배상 권고는 이례적인 사례이며, 투자자들이 펀드의 위험을 인지한 뒤 투자하는 게 원칙"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판매사에만 지나친 펀드 관리·감독 및 배상 책임을 지우고 금융 당국의 책임은 도외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98% 손실 난 펀드를 속여 팔아… "전액 물어주라"
금감원은 지난달 30일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라임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에 대해 분쟁조정을 신청한 투자자 4명에게 우리은행·하나은행·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대우 등 판매사들이 원금을 전액 물어주라"고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최대 배상 비율은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의 80%였다. 금감원이 사상 첫 전액 배상 판단을 내린 것은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판매 당시 이미 '불량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주로 투자한 미국 무역금융펀드인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그룹(IIG)'펀드의 부실 및 청산 소식은 2018년 11월 라임과 신한금융투자에 통보됐다.
그러나 라임은 수익률·투자 위험 등 핵심 정보 11개를 속인 투자 제안서를 만들었다. 은행·증권사는 '가짜' 투자 제안서로 투자자를 모았다. 이미 투자 원금의 76~98% 손실이 난 펀드인데도 1611억원어치가 우리은행(650억원), 하나은행(364억원), 신한금융투자(425억원), 미래에셋대우(91억원), 신영증권(81억원) 등을 통해 팔렸다.
금감원은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돈을 넣는 순간 98%가 부실인 펀드임을 알았다면 아무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판매사들은 라임펀드 부실이 확인된 2018년 11월 이후 투자한 개인 500명과 법인 58사에 대해 이번 결정 기준을 적용해 자율 배상을 진행한다. 다만 "소비자 중과실 등도 따져야 하기 때문에 모두 원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판매사가 모른 채 '부실 상품' 팔았어도 책임
금감원 관계자는 "펀드 가입 시점에 투자자 '착오'가 있었는지가 중요할 뿐, 판매사가 고의로 속였는지는 판단 기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에도 관련 판례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투자 이전에 불법 행위가 저질러져야만 이런 논리가 적용된다. 투자자가 돈을 넣은 이후 운용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민사소송 등 별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금융사들은 이번 결정문 통지 접수 후 20일 이내에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은행 등 판매사들은 "이사회 등 내부 결정을 거쳐 수락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 금융사는 "운용사가 불법을 저질렀는데, 모든 책임은 판매사가 지는 건 과도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판매사 관계자는 "현행법상 판매사가 자산운용사를 검증할 수 있는 권한은 몹시 제한적"이라며 한계를 지적했다. 금융 당국이 판매사로 하여금 운용사 자료를 검증할 의무 등을 부과키로 했지만, 아직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판매사에 모든 책임을 지우면 운용사의 도덕적 해이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투자자들도 스스로 투자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은 금융 사기에 따른 100% 배상이라는 이례적인 경우다"며 "그러나 투자자들이 펀드 투자 전 위험에 대해 꼼꼼히 따지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감독 당국의 책임이 묻혀선 안 되고 반성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금감원은 작년 6월쯤 라임의 문제를 최초 인지하고도 지난 2월에야 중간 검사를 발표했고, 검사 도중 라임 펀드에서 횡령 등 불법이 일어났는데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