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발생해 사망 38명, 부상 12명이라는 참사를 부른 경기 이천 물류 창고 화재의 원인은 용접 작업에서 발생한 불티로 확인됐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일어난 공사 현장 대형 화재의 재탕이었다. 우레탄폼 등 가연성 소재가 널린 실내에서 용접하면서도 화재 예방 기본 조치를 무시했다. 또 무리하게 공기를 줄이려고 화재 위험이 있는 두 작업을 병행하며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대피 통로도 확보하지 않는 등 총체적 인재(人災)로 판명됐다. 지난 2008년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도 우레탄 발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시너 등 위험물에 의해 발생했다. 또 대피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 근로자가 마무리 작업을 하다 대형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5일 이천경찰서에서 진행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지하 2층에서 용접 작업 중 일어난 불티가 건물 천장 마감재에 포함된 우레탄폼에 붙어 불이 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불길은 우레탄폼을 타고 번지다 산소 공급이 잘되는 출입문 부근에서 대형 화염으로 커지며 전체 건물로 번졌다고 판단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8시부터 근로자 A(사망)씨가 지하 2층 8.8m 높이 천장에 설치된 유닛쿨러(실내기)관 산소 용접을 하다 불티가 천장 벽면에 바른 우레탄폼에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A씨가 작업하던 실내기 주변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탔고, 용접용 산소 용기와 LP가스 용기의 밸브가 열려 있던 점 등을 토대로 이렇게 판단했다. 경찰은 인명 피해를 초래한 각종 문제도 지적했다. 당시 용접 작업은 A씨 혼자 고소 작업대에서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화포와 불꽃·불티 비산 방지 덮개 설치, 2인 1조 작업은 무시됐다. 비상경보 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다른 층 근로자들은 무방비로 당했다.

경찰은 특히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사고 당일 평상시의 2배에 이르는 근로자 67명을 투입한 것도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한 지하 2층에서도 10여 명이 화재 위험이 있는 용접과 우레탄폼 마감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5월 초부터 진행할 예정이던 엘리베이터 작업도 전날 시작돼 이날 투입됐던 3명도 숨졌다.

안전을 무시한 설계 변경과 시공도 확인됐다. 이천시 등에 제출한 유해 위험 방지 계획서에는 지하 2층에서 화재 등이 발생하면 방화문을 거쳐 외부 대피가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는 방화문 공간을 벽돌로 폐쇄했다. 이 때문에 4명이 벽돌을 뚫고 대피하려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상 1층부터 옥상까지 연결된 실외 철제 비상계단도 설계와는 달리 외장이 패널로 마감돼 화염과 연기 확산 통로가 되고 대피에 활용되지 못했다.

경찰은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임직원 5명과 시공사인 건우 임직원 9명, 감리단 6명, 협력업체 4명 등 24명을 입건했다. 이 가운데 발주처 1명, 시공사 3명, 감리단 2명, 협력업체 3명 등 9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