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사는 주부 서모(63)씨는 최근 열흘 새 동네 정육점과 식자재 마트에서 LA갈비 10만원, 등갈비 8만원어치를 사서 아들·딸네 가족과 함께 먹었다. 결제는 모두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했다. 서씨는 "예전 같으면 부담이 됐겠지만, 재난지원금도 있고 해서 양껏 샀다"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식을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집에서 쉽게 요리할 수 있는 고기를 더 많이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보다 고기를 더 자주, 많이 사 먹는 건 서씨네 집뿐만이 아니다. 최근 인터넷 맘카페나 블로그에는 집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 인증 사진들과 함께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플렉스(Flex·돈 자랑)했다" "재난지원금으로 고기 파티 한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코로나와 재난지원금으로 집집마다 고기 굽는 풍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金)겹살… 34개월 만에 최고값
코로나 바이러스와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로 소·돼지고기 소비가 늘면서 육류 가격이 치솟고 있다. '국민 고기' 삼겹살 가격은 2년 10개월 만에 가장 비싸졌고, 한우 가격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28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삼겹살 소비자 가격은 지난 27일 기준 1kg당 2만3864원이었다. 2017년 7월 26일(2만4267원) 이후 최고가다. 2월 중순엔 지금보다 약 1만원 가까이 싼 1kg당 1만4476원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외식이 어려워지자, 집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삼겹살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뛴 것이다. 재난지원금 사용 첫날인 지난 13일에 2만2802원이던 삼겹살값은 2주일이 채 안 돼 1000원(4.4%)이나 오른 것이다.
한우값도 크게 올랐다. 지난 2월 중순 1등급 한우 등심 소비자가는 1kg당 8만9757원이었지만, 지난 27일엔 9만4210원으로 올랐다. 삼겹살과 마찬가지로 재난지원금 사용 이후엔 값이 더 뛰었다.
한우는 가격 상승에도 수요를 공급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올 1~4월 도축된 한우는 13만7155마리로, 전년 같은 기간(13만818두)보다 소폭 늘었다. 재난지원금으로 비싼 한우고기를 먹으려는 수요는 더 크게 늘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이 사용되기 시작한 지난 13일 전후(前後) 2주일을 비교했을 때 한우 판매량은 6.8% 늘었다. 그중에서도 채끝(10.2%)과 특수부위(12.4%) 상승률이 컸다. GS리테일 관계자는 "국거리로 쓰는 사태 같은 부위보다 구이용으로 쓰는 고급 부위가 잘 팔린다"고 말했다. 한 유통업체 축산 담당자는 "한우 도매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다 보니 당초 계획보다 몇 달 앞서 소를 잡아 팔려는 한우 농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고기 열풍에 정육점과 정육 식당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주말 부산 강서구의 한 식육식당은 주차 공간도 없고, 매장 안에서 먹으려 해도 자리가 없어서 대기해야 했다. 이 식당 직원은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손님이 없었지만, 재난지원금이 풀린 이후에 손님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서 생삼겹살 등 신선육도 판매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는 편의점에서도 고기 소비가 급증했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국산 냉동 소고기(육우·한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17% 증가했다. 편의점 CU에서도 지난 13~26일 삼겹살 등이 포함된 축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56.1%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