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변가에서 레깅스 차림을 자주 목격할 가능성이 크다.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가 롯데백화점과 함께 출시한 아이스 레깅스(왼쪽),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가 선보인 에어쿨링 레깅스.

등산복(2010)→래시가드(2015)→레깅스(2020).
올여름 산과 바다를 장식할 '국민 레저복'의 자리는 레깅스(leggings)가 차지할 것 같다. 신축성 좋은 소재를 써서 몸에 꼭 맞게 만든 하의로, 예전엔 '쫄쫄이'로 불리던 것이다.

2010년 전후는 해발 300m 동네 뒷산에 오를 때도 ‘흡한속건(吸汗速乾·땀을 흡수시켜 빠르게 건조)’ 소재의 냉감(冷感) 등산복과 ‘탄소 섬유’ 재질 등산 스틱을 잊지 않았던 기능성 등산복의 시대, 2015년 무렵은 나의 소중한 상반신에 한 치의 자외선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오롯이 표현하던 래시가드의 시대였다. 올해는 레깅스가 5년 주기 레저복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레저복 광고 모델은 매년 당대 최고 스타들이 도맡고 있다. 동네 뒷산에 오를 때도 등산 스틱을 갖췄던 아웃도어 전성시대 2010년(위), 래시가드 열풍이 불었던 2015년(아래). 가수 이효리와 배우 정우성이 레저복 유행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아웃도어 시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던 소비자 중에선 레깅스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몇 년 전부터 ‘해외에서 등산복과 래시가드가 한국의 전통 의상이냐고 묻는 이들이 늘었다’거나, ‘일부 여행사 가이드들이 등산복 자제령을 권고하고 있다’는 얘기가 확산한 탓도 크다. 오늘의 선택이 2025년의 후회로 남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레깅스는 등산복이나 래시가드보다 저렴해 먼 미래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위기의 아웃도어, 레깅스 시장 넘본다

2014년 7조160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중년 교복' 프레임에 휩싸이며 2018년 2조5500억원 규모로 추락했다. 그 틈을 치고 올라온 복식(服飾)이 레깅스로 대표되는 애슬레저(일상에서 입는 운동복) 패션이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애슬레저 시장 규모가 2009년 5000억원 수준에서 올해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위기의 아웃도어 업계는 올여름을 겨냥한 신제품 레깅스를 잇따라 출시하며 애슬레저 시장을 넘보고 있다. 7일 롯데백화점은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와 함께 ‘아이스 레깅스’를 단독 출시했다. K2는 ‘플라이 레깅스’, 디스커버리는 ‘플렉스 레깅스’, 블랙야크는 ‘야크타이츠’를 내놨다. 전통 아웃도어 강자들이 레깅스 시장에 참전한 만큼, 올해 산·둘레길·계곡·바다에서 레깅스 차림을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남자의 레깅스, 메깅스(meggings)

레깅스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1~2년 전부터 레저복 시장까지 침투한 레깅스 업체들은 최근 남성 레깅스 시장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남성(male)이 입는 레깅스(leggings)를 부르는 메깅스(meggings)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국산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는 7일 ‘안다르 맨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다. 남성 레깅스 시장은 현재 언더아머, 아디다스,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

남성은 주로 검은색 레깅스에 운동복 반바지를 겹쳐 입는다. 이 패션은 중년보다는 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유행 중이다. 쇼핑 정보 커뮤니티에선 ‘남자 레깅스 체험 후기’가 수십건 이상 검색되는데, ‘다리에 숭숭 난 털을 감춰주고,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어 편하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은 사람은 없다’는 의견과 ‘반바지를 갖춰 입지 않는 것은 사회 상규에 위배되는 망측한 패션’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가 7일 출시한 남성 레깅스

안다르는 이날 남성 레깅스를 출시하며 시원한 쿨링 소재, V존 입체 패턴을 적용해 ‘민망함을 최대한 덜어내고 편안함을 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레깅스 위에 겹쳐입을 수 있는 반바지도 함께 내놨다.

◇레깅스 위에 "반바지 입어야" vs "내 맘대로"

'레깅스는 옷인가, 속옷인가'. 레깅스 시장이 점점 커질수록 관련 논쟁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는 레깅스 논쟁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피트니스·요가할 때 입던 운동복을 사무실·공공장소에서도 입는 유행에 불편함을 느낀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선 레깅스 찬성파의 '# leggingsarepants'(레깅스는 바지다) 해시태그, 반대파의 '#leggingsarenotpants'(레깅스는 바지가 아니다) 해시태그가 세(勢)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레깅스 패션을 놓고 엉덩이를 덮는 긴 상의, 반바지를 겹쳐입어야한다(위)는 주장과 상관 없다(아래)는 주장이 엇갈린다.

최근 이 논쟁은 ‘앞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야외에서 ‘쫄쫄이’ 레깅스를 착용할 때 적합한 상의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국내외 커뮤니티 사이트 반응을 살펴보면 ‘반바지 필수 착용파’는 “하반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옷차림은 예의에 어긋난다” “편하다고 수면바지를 입고 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레깅스 찬양파’는 “내가 입을 옷은 내가 결정한다” “다른 이의 시각적 즐거움·반응을 위해 옷을 입는다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며 ‘패션 자기결정권’을 주장한다. 현재로선 양측의 사회적 합의 도출이 요원해 보인다. 쫄쫄이 바지를 많이 입는 일부 사이클 마니아들도 이 논쟁의 끝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숨죽이며 관전하고 있다.

※[장보고]는 조선일보 유통팀이 먹고, 입고, 사고, 마시고, 여행하는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