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신음하고 있다. 섬유·패션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베트남 등 해외 공장 가동이 중지됐고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매장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하지만 모두 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내놓는 제품마다 완판 행렬을 기록하며 매출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패션업계의 한 팀이 있다. 이랜드월드의 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에 속해 있는 '콜라보셀'팀이다. '겨울왕국' '해리포터' '펭수' '기생충' 등 여러 인기 콘텐츠와 제휴해 의류·잡화·굿즈(기념품) 같은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이 팀은 11명 규모의 작은 팀이다. 4년간 800만장을 팔아 누적 매출 1500억원을 기록한 이 팀은 올해 들어서도 1분기 매출(100억원)이 작년보다 10% 이상 늘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32세 과장에게 전권 맡긴다

코로나가 경영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으면서 기업마다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 시대 생존법을 찾고 있다. 오래되고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사업에 대한 시각과 방향 전환이 힘들기 마련이다. 그동안 관성적으로 이루어졌던 사업 방식과 타성에 젖은 조직 문화가 혁신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기업들이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20~30대 대리·과장 등 낮은 직급의 사원들에게 관리자 직책과 함께 팀 운영의 주요 권한을 모두 맡기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이랜드 사옥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의 콜라보셀팀 팀원들이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3~35세 직원 11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포켓몬고·짱구·해리포터·펭수 등 각종 인기 콘텐츠와의 컬래버(협업) 제품으로 지난 4년간 누적 매출 1500억원을 올렸다. 왼쪽에서 셋째(휴대폰 들어올린 남성)가 박휘웅(32) 팀장.

스파오 콜라보셀팀은 팀장부터 팀원까지 연령대가 모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다. 팀장은 입사 6년차인 박휘웅(32) 과장이 맡고 있다. 회사는 그에게 팀원 인사(人事)부터 기획, 디자인,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걸 맡겼다.

일반 부서의 경우 사업 기획안이 있으면 실현되기까지 팀장→부장→임원→대표 등 여러 결재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업 기획들이 달라지거나 사장된다. 하지만 스파오 콜라보셀팀의 경우 자율적인 팀 운영을 위해 부장·임원 등 중간 결재를 모두 없애고 대표 결재만 받게끔 했다.

중간 단계를 없앤 보고 체계는 사업 추진력을 보장하고 한발 빠른 대응을 가능케 한다. 박 팀장은 "콜라보 사업은 트렌드에 민감한 사업인 만큼 빠른 제품화가 중요하다"며 "결재 라인 단순화로 제품 판매까지 과거 5개월씩 걸리던 기간이 현재는 3주까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파오가 최근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인기 캐릭터 '펭수'와의 제휴를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진행해 히트를 쳤는데, 그 비결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콜라보셀팀은 아이돌·만화·영화 등 유행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을 끌어모았고, 트렌드 콜라보에 강한 팀이 됐다. 밀레니얼 세대로만 구성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갖춰진 온라인 경쟁력은 덤이다. 디지털 세대로만 구성된 콜라보셀팀의 경우 이번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기 전부터 모바일 메신저로 회의를 해왔다. 콜라보 제품을 만들 때도 매번 5만~10만명 규모의 누리꾼 설문조사를 진행할 만큼 온라인 마케팅에 익숙하다. 대부분의 제품이 온라인에서 회자되며 인기를 끌다 보니 판매 경로 역시 기존 오프라인 판매 중심의 패션 브랜드와 달리 온라인 중심이다. 업계가 휘청거리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선전할 수 있던 배경이다.

백화점 업계도 새로운 실험 동참

비슷한 실험은 다른 업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백화점이다. 백화점 업계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밀레니얼 조직에 대한 더 큰 기대를 품게 됐다. '언택트(untact·비대면) 소비' 등 온라인 쇼핑이 가속화하면서 매출 급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6개월 전 'MD셀(Cell)'이라는 조직을 신설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백화점에 입점할 만한 신규 브랜드를 발굴하고 백화점 내 브랜드 배치 전략을 마련하는 업무를 맡는다. 백화점 브랜드 발굴·입퇴점은 보통 상품기획자(MD)들이 맡지만, 조직장을 맡은 건 입사 6년차 유진아(29) 대리였다. 유 대리는 빅데이터팀 경력만 있을 뿐 MD 경험이 전무한 인물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MD의 관점이나 상품군 기준에서 벗어나 고객 빅데이터 관점에서 백화점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된 팀"이라며 "팀원들 역시 작년 10월 입사한 컴퓨터공학·통계학 전공 신입사원들로 구성됐다"고 했다. 롯데백화점은 MD셀이 만들고 있는 고객 관련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지난달 28일 내놓은 통합 온라인 쇼핑 플랫폼 '롯데온'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도 작년 4월부터 밀레니얼 세대 맞춤형 조직 문화 제도 '크리에이티브 존'을 운영 중이다. 20~30대 대리급 직원들이 직접 유치한 브랜드를 운영해볼 수 있는 실험 공간을 전국 현대백화점 14개 점포 39개 공간(약 397평)에 마련했다. 작년 한 해 이들이 직접 발굴해 운영한 브랜드 행사만 147건에 달한다. 현대백화점 역시 올해 크리에이티브 존에 특화된 매장 인테리어와 광고·홍보를 개발하는 등 관련 사업 지원을 더 늘릴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는 기존 사업의 한계를 보여주며 기업들의 위기의식을 크게 높였다"며 "밀레니얼 조직 같은 새로운 성장 전략을 찾기 위한 고민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