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 사령탑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지난 3월 업무추진비 사용액은 5만800원이 전부다. 토요일인 지난 3월 7일 민간 전문가들과 코로나 방역 방안을 논의하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값으로 쓴 돈이다. 지난 2월 23일 정부가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심각'으로 올린 뒤 정 본부장이 쓴 유일한 업무추진비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심각 단계에 들어선 뒤 충북 오송의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를 벗어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 본부장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고 있다고 했다. 긴급상황센터와 1㎞ 정도 떨어진 관사를 오가는 생활을 두 달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질본의 한 간부급 직원은 "긴급상황센터에서 관사로 이동할 때 관용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게 정 본부장의 거의 유일한 운동이자 휴식인 것 같다"고 했다. 업무추진비는 기관장 등 간부급 공무원이 업무상 회의 같은 공무를 위해 지출하는 돈이다.

◇오전 8시 출근, 자정쯤 퇴근

질본 관계자는 "정 본부장은 오전 8시쯤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긴급상황센터에서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다 밤에는 개인 사무실로 옮겨서 일한다. 야간 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편하게 근무하고, 눈치보지 않고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틀째 한 자릿수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고민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2차 대유행이다. 정 본부장이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실로 들어서는 모습.

정 본부장은 24시간 긴장 상태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본부장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질본 직원들은 요행을 바라거나 추측성 보고를 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고 한 직원은 말했다. 20년간 질본에서 근무했다는 직원은 "본부장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강하다. 만약 본부장 입에서 '좀 더 알아보세요'라는 말이 나오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뜻"이라고 했다.

정 본부장은 자정쯤 관사로 걸어서 돌아가는데 언제 퇴근했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스텔스 퇴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직원은 "관사에 돌아가서도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아 실제 퇴근은 언제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자택은 2~3주에 한 번 정도 옷을 챙기러 다녀오면서 의사인 남편, 두 아들과 안부를 나눈다고 한다.

◇거리 두기 완화한다지만, '2차 대유행' 대비 중

정 본부장은 신천지 첫 확진자(31번 확진자)가 발생하기 사흘 전인 지난 2월 15일 "장기적 유행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정부는 확진자가 줄어들고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를 발표했지만, 정 본부장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흐른다. 최근 2주일간 코로나 장기화와 2차 대유행 가능성을 공식 경고한 것만 일곱 차례다. 지난 22일에는 "2차 대유행 가능성이 크다. 최악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 본부장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은 "과학적 근거와 합리성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이다. 질본 관계자는 "막연한 추측이나 적당주의는 그분 앞에서 안 통한다"고 했다.

◇공무원이니 급여 30% 반납하라는 정부

방역에 헌신하는 정 본부장이 이달부터 7월까지 4개월간 급여의 30%를 반납하게 됐다. 연봉(1억2784만원)의 10%인 1200만원쯤 된다. 정부가 '코로나 고통 분담'을 이유로 정부 부처 장관·차관이 이 기간 급여 30%를 반납하도록 권고했고 정 본부장도 동참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그것도 차관급 고위직이 정부의 방침과 권고를 거부하기 어렵다. 사실상 강제적인 조치라는 뜻이다. 907명의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은 올해 7억600만원(1인당 평균 77만8000원)의 연가보상비도 못 받게 됐다. 국민재난지원금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모든 정부 부처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연가보상비는 21일의 연가를 쓰지 못한 만큼 받는 돈이라, 연가를 가기 어려운 질본 직원들의 경우 타격이 큰 편이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4개월 이상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며 방역에 힘쓴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한다면 누가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느냐"는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