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크 조코비치(33·세르비아)와 앤디 머리(33·영국)는 닮았다. 1987년 5월생(조코비치 생일이 꼭 일주일 늦다), 큰 키에 마른 체격, 아름다운 아내와 남매를 뒀고 세계 랭킹 1위 고지를 밟아 봤다. 열한 살 처음 겨룬 날부터 줄곧 라이벌로 지낸 두 남자가 지난 17일 인스타그램에서 한 시간 넘게 수다 떨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이렇게 긴 시간 대화는 처음"이라는 탄식과 함께.

"테니스, 누가 '찐'이냐"

두 남자는 분야별로 누가 최고인지 따져 봤다. 서브는 닉 키리오스(25·호주·세계 40위). 조코비치가 "큰 키(193㎝)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최고"라고 치켜세우자, 머리는 "닉은 워밍업이 필요 없다. 이건 타고났다"고 거들었다.

리턴과 백핸드는 서로를 지목했다. 조코비치가 "너와 경기하면 모든 공이 되돌아온다"고 푸념하자 머리는 "너야말로 내 공이 가는 곳마다 있어. 리턴 성공률이 90% 넘는 게 말이 돼?"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머리가 "왼발을 쭉 뻗어 받아치는 너의 슬라이딩 백핸드는 아무도 못 따라 한다"고 하자 조코비치는 "너의 백핸드는 워낙 견고해 뚫어 낼 공간이 안 보였다"고 털어놨다.

'테니스 황제'라 불리는 로저 페더러를 두고선 "완벽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조코비치가 "우리처럼 리턴에 능한 상대에게 정교한 발리를 구사하는 게 놀랍다"고 운을 떼자 머리는 "로저는 벼랑 끝 상황일수록 담대한 발리를 성공시킨다. 이건 기술 너머 무언가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신력 최강은 이구동성 라파엘 나달. 조코비치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부상을 견뎠다. 로마 시대 검투사를 보는 것 같다"고, 머리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침착하고 끈질기다"고 평했다.

포핸드 최강을 두곤 의견이 갈렸다. 조코비치의 선택은 "토르의 망치처럼 강력하다"는 2009 US오픈 우승자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 머리는 나달을 꼽았다. "나달이 왼손 포핸드 때문에 경기 지는 거 봤니?" 누가 역사상 최고(Greatest Of All Time)냐는 물음엔 현역 세계 1위 조코비치가 말을 아꼈다. 머리의 답은 명쾌했다. "너와 로저(페더러), 라파(나달) 셋이 역사상 최고야. 그 셋이 동시대를 뛴 거라고!"

동갑내기 라이벌의 20년 우정

둘의 프로 통산 상대 전적은 조코비치가 25승11패로 앞선다. 하지만 생애 첫 대전에선 머리가 웃었다. "우리 처음 경기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 프랑스 타르베스 주니어 대회에서 내가 이겼지(6-0 6-1)." 조코비치도 동의했다. "맞아, 그때 너는 나를 완전히 눌렀어."

성인이 되고선 조코비치가 강했다. 머리는 네 차례 호주 오픈 결승 맞대결에서 조코비치에게 모두 졌다. 가장 뼈아팠던 대회는 2016년 프랑스 오픈 결승. 머리가 말했다. "과거를 단 한 번 바꿀 수 있다면 4년 전 프랑스 오픈을 선택할래. 내가 첫 세트를 이기고도 내리 3세트를 졌잖아. 그때가 절호의 우승 기회였는데…."

그랜드슬램 17회 우승자 조코비치도 머리 앞에선 쓰라린 기억이 있다. "넌 올림픽 금메달이 두 개(2012·2016)나 있잖아. 특히 런던 올림픽 준결승에서 날 이긴 것(7-5 7-5) 기억나? 난 너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이 없어."

매주 도시를 바꿔 이동하는 프로 테니스 선수에겐 한곳에 오래 머무는 일상이 낯설다. 둘은 모처럼 아빠와 남편 역할을 하고, 은퇴 후 삶을 예습하는 기간으로 코로나 시절을 보낸다고 전했다. 머리가 "아이들이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그런 순간들을 지켜봐서 행복하다"고 자랑하자, 스페인 별장에 머무는 조코비치도 지지 않았다.

"난 은퇴 후 삶을 걱정했거든? 햇살 아래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테니스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