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 내리면 승강장 바닥부터 타일 곳곳이 패여있고 머리 위로 뻥 뚫린 구멍이 들여다 보이는가 하면 벽면엔 곰팡이가 드문드문 보인다. 1974년 개통해 하루 평균 승객 11만8000명이 오가는 서울 대표 역사(驛舍)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직장인 박찬웅(31)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시설물이 낡은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서울 강북 지역의 이런 지하철역 12곳이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냉방 시설이 대폭 보강되고, 깔끔한 벽과 바닥·천장으로 바뀐다. 역사 한켠엔 시민을 위한 문화 시설도 들어선다. 서울시가 총 2500억원을 들여 내년 6월까지 완료할 지하철 1·4호선 역사 12곳의 전면 리모델링 사업 얘기다.
2일 본지가 입수한 ‘1·4호선 지하철 노후역사 환경개선 추진계획’에 따르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노후 역사 12곳의 승강장과 환승 통로를 전면 리모델링하고 문화예술철도 관련 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당초 서울시가 계획한 1·4호선 7개역 리모델링 사업을 이번에 12곳으로 대폭 확대했고, 투입 예산도 1930억원에서 2502억원으로 늘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초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사업비를 절반씩 부담하려 했으나 공사로부터 재원 조달이 어려웠다”며 “이번에 변경된 계획에 따라 사업비 전액을 시비로 투입해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전면 리모델링 대상 역사 12곳은 1974년 개통한 1호선 서울역·종각·종로3가 및 5가·동대문·신설동·제기동·청량리역과 1985년 문을 연 4호선 서울·미아·쌍문·한성대입구역이다. 노후 역사에 대한 간단한 보수 공사는 이뤄져 왔지만 시가 전면 리모델링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018년 여름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 달을 보낸 후 발표한 ‘강남북 균형 발전 계획’에 따른 후속 조치다. 시 관계자는 “서울 강남이 1970년대 집중 투자로 발전했듯, 강북의 교통·주거·교육·인프라 등 개선에 우선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시는 2018년 11월부터 ‘지하철 1·4호선 노후 역사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당초 계획은 7개 역사를 대상으로 했으나, 대폭 확대했다. 시 관계자는 “1~8호선 역사 중 노후도, 시설 규모, 이용자 수 등을 고려해 12곳을 새로 선정했다”며 “균형 발전 차원에서 강북 지역 노후역사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사를 통해 우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강장과 대합실이 전면 보수된다. 역사별로 승강장이 들어서 있는 지하 1~2층이 주요 공사 구역이 될 전망이다. 개통한지 40년을 넘긴 1호선, 30년 이상 지난 4호선의 노후 역사들은 승강장 천장, 벽면, 바닥의 마감재가 심하게 낡았고 일부 시설은 떨어져 내린다. 앞으로 천장은 스테인리스 등 고급 마감재로 교체되고, 벽면과 바닥에 화강석 등이 깔린다. 의자, 소화전, 자판기, 휴지통 등 승강장 내 시설물도 새 디자인으로 바뀐다.
또 환승 통로와 역사 중간 중간에는 역사별 특성을 살려 차별화된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1호선 신설동역 환승 통로에는 숲길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넣고 벽면을 불규칙하게 채색해 위치에 따라 빛이 다양하게 관통하는 ‘라이팅 아트’를 도입키로 했다. 1호선 동대문역 내 휴게공간에는 나무 재질의 인테리어 소품을 연이어 배치해 흐르는 시간을 표현하는 ‘시간의 문’을 조성한다.
지하철 1호선 8개역 공사는 사업 기간을 기준으로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된다. 종로5가·동대문·신설동역 등 3개 역사 공사는 연내 완공이 목표다. 청량리 등 나머지 5개 역사는 내년에 마무리된다. 1호선 8개역 사업 규모는 연면적 3만8711㎡에 달하고 867억2600만원이 투입된다.
지하철 4호선의 경우, 서울·미아·쌍문·한성대입구역의 승강장 내부를 전면 수리한다. 연면적 2만9310㎡ 규모 리모델링 공사와 함께 냉방 시설을 전면 보급하는 사업 등에 1634억3000만원이 쓰인다. 4호선 4개 역사는 그동안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여름철 승객들의 불만이 컸다.
노후 역사 총 12곳을 리모델링하면서 ‘문화 예술 철도 공간’도 조성된다. 시가 지난해 2월부터 추진한 문화예술철도 사업은 오는 2022년까지 역사 내 상업광고를 9만개로 줄이는 대신 빈 자리에 문화·예술 작품 등을 전시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7월 지하철 7호선 반포역에 지하철과 철도를 주제로 열차 모형, 기념 승차권, 역대 지하철 캐릭터 등을 전시한 ‘철도 동호인 문화공간’을 개관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각 역사의 특성과 역사, 주변 시설 등에 어울리는 문화예술철도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2개 역사에 대한 리모델링 공정을 단계적으로 진행해 역사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