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운영하는 내비게이션 앱(응용 프로그램) 'T맵' 은 지난주 목요일(지난달 26일) 공지를 통해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 우회 경로를 선택 옵션으로 추가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아동을 다치거나 사망케한 운전자의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한 '민식이법'이 시행된 것에 따른 조치다. SK텔레콤에 따르면 민식이법 시행을 앞두고 T맵 고객센터에는 '어린이 보호 구역을 피해갈 수 있는 기능을 넣어달라'는 운전자들의 요청이 하루에도 100건 넘게 쏟아졌다. SK텔레콤은 "어린이 보호구역 주행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어린이의 목소리로 안내하는 서비스를 추가하고, 아예 피해가고 싶은 운전자를 위해 우회 기능도 도입하기로 했다"며 "다만 전국 보호구역 데이터를 다시 업데이트하고, 우회를 해도 전체 거리에서 큰 변화가 없는 주행 안내를 하기 위해 정식 적용까지는 향후 1~2달이 걸릴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잠깐, ‘민식이법’이 뭐야?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9) 군의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이다. 당해 12월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안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를 포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를 낸 가해자를 가중처벌’한다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두번째 내용이 쟁점의 핵심이다. 이 법은 보호구역 내에서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사망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운전자에게 최소 징역 3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운전자의 과실이 0%라면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지만, 이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상 과실 비중과 관계없이 운전자에게 가중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회 기능 내놓은 중소기업, ‘다운로드 6배 폭증’
민식이법 시행에 맞춰 어린이 보호구역 우회기능을 가장 먼저 도입한건 맵퍼스라는 중소기업이다. 이 업체는 '아틀란'이라는 내비게이션 앱을 운영하고 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당일, 이 업체는 서비스를 업데이트하면서 '스쿨존 회피 경로 탐색' 기능을 추가했다. 이 기능은 민식이법 시행에 바짝 긴장했던 운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됐고, 그 결과 지난달 24일부터 1주일간 아틀란 앱을 다운로드 한 수는 전주 대비 6배 이상 폭증했다. 맵퍼스 측은 "법 시행 전부터 이용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며 "기능 도입 후 앱의 일간 사용자 수(DAU)는 17% 정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아틀란 앱을 이용해 스쿨존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직접 '환경설정'에 들어가 '스쿨존 회피경로 탐색'이라는 옵션을 활성화시켜야한다. 이 옵션이 켜진 후에는 내비게이션이 모든 경로 탐색에서 스쿨존을 피하는 경로를 제시하게 된다. 실제로 아틀란 앱을 사용해 영등포구청역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봤다. 스쿨존을 회피하지 않을때는 11.4㎞에 29분이 걸린다고 나왔고, 회피 기능을 키자 12.4㎞ 경로에 약 33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장 빠른 길에서 스쿨존을 피하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전체 주행거리와 소요시간이 미세하게 늘어난 셈이다.
◇요구 빗발치지만…IT기업들은 ‘고심’
‘어린이 보호구역’ 우회 기능이 이토록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IT기업들은 고민에 빠졌다. 내비게이션을 운영하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요구가 많은데다, 전체 내비게이션 시장의 55%를 차지하는 SK텔레콤까지 해당 서비스를 준비하고 나서니까 경쟁 기업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됐다”며 “다만 민식이법이 워낙 쟁점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안이라, 서비스를 덜컥 도입했다가 역풍을 맞지 않을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식이법은 시행 첫 날부터 ‘준수할 자신이 없다’며 법안을 개정하거나 폐지를 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아이를 둔 부모들은 “운전자가 교통 안전을 준수하면 문제가 없는 일이 아니냐”며 맞서고 있다.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황에서, 기업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스쿨존 우회 기능을 도입한다 해도 국민 정서상 이를 나쁘게 받아들일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을 제외한 국내 주요 내비게이션 서비스 사업자들은 우회 기능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국내 2위 내비게이션 앱인 '카카오내비'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일단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음성 안내 기능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며 "우회 서비스의 도입 여부는 아직 검토중으로, 확정된게 없다"고 밝혔다. '원내비'를 운영하는 KT역시 "스쿨존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해 주는 기능을 추가하겠다"며 "우회 경로 기능은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적용 여부와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여전히 검토중이며, 최대한 거부감 없는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있다"고 밝혔다. 지도앱에서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네이버는 "현재 전국 스쿨존에 대한 데이터 업데이트를 완성시킨 상태"라며 "우회기능 도입에 대한 일정은 정해진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일각에선 ‘스쿨존 우회는 일부 음주단속 정보를 공유해 이를 피하게 해주는 서비스와는 달리, 도입이 필요한 서비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운전이 미숙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면서 어린이 보호구역의 차량 통행도 줄일 수 있기때문에 실제로 어린이 안전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