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이 출시한 판피린은 지난 60년 동안 '한국인의 초기 감기약'으로 사랑받았다. 사진은 1967년 초창기 판피린 인형 캐릭터를 내세운 조선일보 광고.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친숙한 동아제약 '판피린'은 60년 넘게 대중 곁을 지켜온 장수 의약품 상표다. '효과 빠른 감기약'으로 알려져 집집이 갖추는 필수 상비약이 되면서 중년층 이상이라면 한 번쯤은 판피린을 안 써본 사람이 없을 터다.

◇시대적 요청으로 탄생해 안전상비의약품 되기까지

판피린은 강신호(93)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동아제약에 입사해 만든 첫 번째 약이다. 판피린이 탄생한 1960년대에는 항생제·감기약 등의 수요가 많았다. 한국전쟁(6·25)을 막 치르고 대부분 국민의 영양 상태가 나빠 가벼운 감기만으로도 앓아눕는 사람이 무수했던 때라서다. 약 이름을 고민하던 강 명예회장은 해열제에 주로 들어가는 성분인 '피린'에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을 붙여 '판피린'이라고 지었다. 당시에는 아미노피린·스루피린 등 피린 계통 약제가 감기에 효과가 좋았다. 판피린은 '감기 잡는 성분은 모두 넣은 약'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1956년 알약 형태로 품목 허가를 받은 판피린은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돼 전국 약국에 입고됐다. 지금은 제제 기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그때만 해도 약을 대량으로 만들어 품질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후 판피린은 주사제·시럽제 등으로 제형이 바뀌며 보완을 거듭했다. 1977년에는 액체 형태의 '판피린 에스(S)'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요즘 판매하는 제품과 같은 크기의 병에 담긴 것이었다.

동아제약은 1990년 '강하게'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포르테(Forte)'에서 첫 글자를 딴 '판피린 에프(F)'를 출시했다. 2004년에는 판피린 에프에 허브 성분을 첨가한 '판피린 허브'로 수많은 감기 환자가 활기를 찾도록 도왔다. 현재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판피린 큐(Q)'는 '빠르게 낫게 한다'는 뜻으로 '퀵(Quick)'을 강조한 제품이다.

◇60년 전부터 대중 사로잡은 "감기 조심하세요~"

현재 판매 중인 '판피린 큐(Q)'. 액상 형태로 효과가 빠른 특성을 강조했다.

아직도 날씨가 쌀쌀해지거나 일교차가 큰 환절기가 오면 많은 사람이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판피린 광고 속 대사를 떠올린다. 동아제약이 1960년대 도입한 캐릭터 마케팅 전략 덕이다. 동아제약은 하얀 두건을 쓴 판피린 인형을 TV와 지면 광고에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에게 판피린이 '한국인의 초기 감기약'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형에 걸맞은 목소리로 간결한 메시지를 인상깊게 전달하는 데는 성우 장유진이 활약했다. 그의 목소리가 담긴 판피린 광고는 최근까지 라디오 전파를 타며 중 장년층 소비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1985년 판피린 광고에는 구관조가 등장했다. 강아지·고양이가 대부분이었던 동물 광고에 사람 말을 따라 하는 구관조가 출연한 것은 큰 화제가 됐다. 광고에 컴퓨터그래픽(CG) 기법이 사용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96년 판피린 광고에서는 광고 모델이 판피린 캐릭터로 변하는가 하면, 판피린 병이 늘어났다가 휘어지는 등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연출됐다. 2000년대 들어서 동아제약은 '펀(Fun)' 코드를 활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방송된 TV 광고다. 당시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 출연진이 총출동해 광고를 보는 소비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2018년에는 주 소비층을 20~30대까지 확대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 박보영을 모델로 기용했다.

◇10명 중 8명이 아는 국민 감기약 '판피린'

1956년 상표 등록된 판피린은 대한민국 1등 감기약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판피린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일반의약품 감기약 시장에서 매년 2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는 300억원대 매출 제품에 이름을 올리고 성장세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판피린은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온 가족이 다 아는 감기약'으로도 알려졌다. 지난해 동아제약이 6개월 이내 감기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 25~6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판피린 브랜드의 보조 인지율은 86.7%로 나타났다. 10명 중 8명 이상이 판피린을 안다는 뜻이다. 판피린 복용 만족도는 82.9%에 달했다. 특히 판피린 캐릭터와 "감기 조심하세요" 캐치프레이즈는 90% 이상이 "안다"고 대답했다.

판피린은 감기·몸살·두통에 잘 듣는 '한국인의 초기 감기약'이라는 정체성과 시대 흐름에 발맞춘 제품 개발, 광고 캠페인 등을 통한 꾸준한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캐치프레이즈와 캐릭터 마케팅 등을 밑거름 삼아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에 맞춰 제품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흔들림 없이 일관돼야 소비자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다"며 "판피린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여 전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판피린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