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패싱’의 응보일까. 도쿄올림픽 개최가 미뤄진 여파로 일본 게임 회사 닌텐도와 세가가 4년간 제작한 ‘마리오와 소닉 AT 2020 도쿄 올림픽’의 흥행이 불투명해졌다.
이들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시작해 매 하계·동계 올림픽 때마다 ‘마리오와 소닉 올림픽 시리즈’를 제작해 왔다. 예외는 단 하나, 평창올림픽뿐이었다.
세가는 “평창올림픽은 유비소프트(Ubisoft)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라이선스를 가져가는 바람에 게임을 제작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이머는 많지 않았다.
세가는 도쿄올림픽 라이센스를 2016년 10월에 일찌감치 획득했다. 유비소프트는 2017년 6월에야 그들이 개발·유통하는 게임 ‘STEEP’ 확장팩으로 평창올림픽을 다룬 콘텐츠 ‘올림픽으로 가는 길’을 발매할 예정이라 발표했다. 도쿄올림픽 라이선스는 서둘러 챙긴 세가가 먼저 시장에 풀려 있던 평창올림픽 라이선스는 수개월간 방치한 뒤 유비소프트에 넘겼다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게임을 만들 의지가 있었다면 그렇게 안이했을 리 없다.
게다가 이들은 도쿄올림픽 라이선스 획득을 발표한 공식 보도자료에서 “올림픽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라이선스를 원했다”고 밝혔다. 평창올림픽 라이선스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다. 여러 모로 봤을 때 의도적인 ‘코리아 패싱’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그저 한국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멀쩡한 게임을 놓은 것은 아닌 듯하다. 동계 올림픽 전작인 ‘마리오와 소닉 소치 동계 올림픽’ 판매 실적이 6만장 정도로 시원찮던 차에, 다음 개최지가 마침 ‘한국’이기도 하니 내친김에 개발을 접었으리라는 추측이 많다. 대신 하계 올림픽 게임은 대체로 동계 올림픽 게임보다 판매량이 많은 편인데다, 이번 올림픽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인만큼 공을 깊이 들이면 그만큼 흥행으로 돌아오리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세가는 “제작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만큼 퀄리티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리오와 소닉 평창 동계 올림픽’을 기대하던 팬들은 적잖이 아쉬워했다. 일부 게이머들은 직접 ‘마리오와 소닉 평창 동계 올림픽’ 패키지를 디자인해 올리기도 했다.
2019년 11월 1일 갖가지 잡음을 뚫고 ‘마리오와 소닉 AT 2020 도쿄 올림픽’이 발매됐다. 그러나 남은 2019년 두 달간의 판매량은 20만장에 불과했다. 4년간 개발한 게임치고는 영 신통찮은 수준이었다. 참고로 일본 게임 회사 반다이 남코가 3년간 개발해 닌텐도 스위치로 발매한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은 첫 3일간 120만장이 팔려나갔다. 당연히 두 게임의 제작팀 규모나 예산 등을 동등 비교할 순 없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래저래 기대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실적이긴 하다.
게임 특성상 초반 흥행이 미진하더라도 올림픽이 다가오면 반등효과를 기대해 볼만은 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망은 생각지도 못한 천재지변에 꺾였다. 해를 넘기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며 도쿄올림픽 연기 또는 취소 논의가 불거진 것이다. 일본과 IOC가 막판까지 정상 개최를 고집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24일부로 도쿄올림픽 연기가 확정되며 ‘마리오와 소닉 AT 2020 도쿄 올림픽’의 운명 또한 미궁으로 접어들고 만다.
기왕 만든 게임이니 그대로 판매를 강행할 수도 있지만, 그런다 한들 ‘자국 올림픽 흥행 특수’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2021년에 맞춰 새 게임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기존 게임을 2021년 버전으로 손봐 재발매하더라도 로고나 디자인 교체,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추가 작업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물론 게임사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파생 상품들도 앞날이 순탄치 않다. 1월 23일부터 전국 오락실에 공급한 ‘마리오와 소닉 AT 도쿄 2020 올림픽 아케이드 게임’은 리콜까지도 고려해야 할 판이다. 이 게임기 가동 기념 이벤트에서 상품으로 내걸었던 도쿄올림픽 입장권 10장도 올림픽 시기가 바뀌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5월 7일 발매를 목표로 개발 중이던 모바일 게임 ‘소닉 AT 2020 도쿄 올림픽’ 역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