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죽음ㅣ더글러스 머리 지음ㅣ유강은 옮김ㅣ열린책들ㅣ512쪽ㅣ2만5000원 2015년 가을, 가족과 함께 시리아를 탈출해 유럽으로 가던 세 살배기 소년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됐다. 얼굴을 모래 속에 묻은 채 맞은 최후에 온 세계가 애도의 눈물을 흘렸고, 유럽 인권 단체들은 이민자 수용에 소극적인 유럽 각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반대 목소리도 컸다. 2015년 한 해에만 이민자 200만명이 독일로 몰려들었다. 많은 독일인이 자신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기는 것 아닌지 걱정했다. 같은 해 이민자 폭증 사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책 ‘독일이 죽어가고 있다’가 나오자 단숨에 20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 영국에서 태어난 사내아이 이름으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톰도 조지도 아닌 무함마드였다. 수도 런던 인구를 조사했더니 거주자 중 자신을 ‘백인 영국인’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44.9%로 나타났다.
영국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저자 더글러스는 2017년 출간한 이 책에서 대규모 이민 사태의 종착지는 유럽의 죽음이라고 단언한다. 핏줄뿐 아니라 문화까지 '유럽적'인 모든 것이 유럽 대륙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무슬림의 유럽'이 들어설 것이며, 종말의 날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명이 끝나기 전에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죽음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어서 더 비극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인은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였던 국가들에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옛 식민지 출신 이민자 유입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2차 대전 이후 탈식민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를 이민 확대로 해결하려는 태도도 유럽이 죽어가는 이유로 꼽는다. 여기에 2011년 터진 아랍의 봄 사태 이후 지중해가 북아프리카인의 이민 루트가 됐고,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며 터키를 통해 들어오는 중동 출신 난민까지 가세하며 유럽의 자살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민자를 받아들이자는 쪽은 그것이 인류애의 실천이며 인도주의라고 주장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가식적인 자기만족일 뿐이다.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PC)의 포로가 된 유럽인은 인종주의자로 몰리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물론이고 테러 행위조차 제대로 비난하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학문 연구조차 PC에 포박당했다고 고발한다. 고대 그리스 문서가 무슬림 덕분에 보존됐다는 기존 주장을 반박하고 시리아 기독교도 세력이 보존했다는 내용의 논문은 학문적 논쟁 대상이 아니라 "이슬람 혐오자를 제재하라"는 청원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그 가운데 유럽의 숨통을 끊는 가장 치명적인 독극물로 저자는 자유주의와 다양성을 옹호해 온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이 이슬람의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문화로 대체되는 현상을 꼽는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가 살해 협박을 당하고, 이슬람 풍자만화를 게재한 잡지 샤를리 에브도 기자들이 살해당한 사실 등을 열거하며 "유럽의 자유주의는 관용 없는 자들까지도 관용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등 유럽을 피로 얼룩지게 한 각종 폭력 사건을 열거하며, 유럽은 다문화 옹호라는 선의의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슬림 거부를 담은 내용이 지나치게 직설적이여서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도 체류 외국인 230만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저자 주장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유럽의 이민 파열음을 충실히 소개한 이 책을 참고할 만하다.
다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지나친 유럽 중심 역사관은 읽기 불편하다. 그는 제국주의 침탈사를 사과하고 이민자 수용을 통해 보상하려는 양심적 목소리를 ‘죄의식을 느끼려는 끊임없는 욕망’이라고 조롱한다. ‘유럽인은 구타를 당하고도 가해자가 된다’는 주장은 뻔뻔하기까지 하다. 벨기에 식민지 시절 최대 1000만명이 학살당한 콩고나, 프랑스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일으켰다가 무수히 피 흘린 알제리인들 앞에서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