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키에 이두근의 둘레는 50㎝. 허벅지 둘레는 67㎝. 양어깨엔 성인 주먹 세개만 한 크기의 근육이 붙어있었다. 마치 티셔츠 안에 미식축구 옷을 하나 더 껴입은 듯한 모습이다.

과거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코너가 끝나는 것을 알리는 징을 치는 남자로 이름을 알린 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피트니스 선수가 된 황철순(38)씨다.

최근 근육 강화 약물 투약 사실을 고백한 ‘징맨’ 황철순(38)씨

황씨는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본인이 근육 강화 약물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피트니스 선수들 사이에선 지난해 1월부터 자신의 약물 남용 사실을 고백하는 움직임이 확산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미투(Me Too) 운동에 빗대 ‘약투 운동’이라고 부른다.

약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화살은 업계 대표 스타인 황씨에게 가장 먼저 향했다. 황씨는 2010년 세계 피트니스 협회 ‘머슬마니아’의 피트니스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거머쥐었다. 이후에도 4년간 세계대회에서 1~2위에 입상했다. 대중적인 관심과 함께 ‘거대한 몸을 만드는 데 약물을 쓰지 않았을 리 없다’는 의심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러나 황씨는 지난달까지 투약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황씨는 "내 고백 때문에 피트니스 업계가 망가질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황씨는 "2009년 처음 데뷔했을 땐 전통적인 보디빌딩이 아니라 화장을 하고, 청바지를 입는 피트니스 선수들에게 편견이 많았다"며 "화류계 종사자, 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피트니스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졌다. 황씨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선수들의 방송 출연, 해외 행사 초대 기회도 늘어났다. 황씨는 "선구자 격인 내가 약물 사용을 인정하면 나뿐만 아니라, 애써 일궈온 선·후배들의 일터가 함께 없어질까 봐 겁이 났다"고 말했다.

황씨는 투약 의혹이 나올 때마다 ‘도핑 테스트(약물 검사)에 걸린 적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비난 여론은 더 커졌다. 유튜브 영상마다 욕설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고, 황씨를 비판하는 동료 선수들의 영상의 조회 수는 50만~100만에 달했다. 황씨는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과장된 부분은 바로잡기 위해서 약물 사용을 인정하는 게 낫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황씨는 "약물을 처음 사용한 시점은 세계 대회를 앞둔 2012년"이라고 말했다. 경구형 단백동화제(아나볼릭) 스테로이드 3알을 하루에 나눠 먹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황씨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약물 없이 동양인이 흑인·백인을 제치고 세계 무대에서 1등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약물 종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대회나 행사를 앞두고 1㏄ 정도의 약물을 주(週)당 2~4회씩 투약했다. 운동은 하루 3~6시간씩 했다. 약품은 스테로이드가 합법인 동남아시아 등에서 구매했다. 3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고 한다. 황씨는 "난 몸에 이상이 없지만, 내가 쓴 약물의 양이 누군가에겐 치사량일 수 있다"면서 "내가 사용한 양이 기준이 될 순 없다. 약물은 안 쓰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올해는 투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약투 운동’을 주도한 피트니스 선수들은 "매일 20회 투약 및 복용했다" "성 기능을 잃었고, 내분비계가 교란돼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헬스장 트레이너들이 물에 약을 몰래 타서 고객들을 서서히 중독시킨다"는 폭로도 있었다.

황씨는 "하루 20회 투약은 외국 최상위 선수들의 투여량보다도 10배 이상 많은 양"이라면서 "국내 선수 중 일부가 지인을 통해 약물과 투약법을 소개받고, 약물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용하는 실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일부 극단적인 남용 사례를 부각해서 모든 피트니스 선수들이 ‘마약 중독자’ ‘약물 브로커’인 것처럼 묘사된 것은 아쉽다.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본인의 약물 사용에 대해서는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나는 법적인 처벌, 혹시 모를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흑인·백인들과 세계 대회에서 경쟁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극히 희귀한 사람"이라며 "운동에 열정이 있어서 한 일이었지만,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말주변이 없어 의도가 왜곡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황씨는 "약물을 사용하는 피트니스 선수들을 낮춰 부르는 ‘로이더’ ‘약쟁이’란 말보다는 ‘비(非)내추럴’이라고 불러달라"고 주장했다가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비난을 받았다. ‘피트니스 업계의 선구자로서 투약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주저스러웠다’는 말을 ‘스케이팅의 김연아’에 빗댔다가 "감히 김연아를 언급한다"며 또 비난을 받았다.

황씨는 "제 언행이 불편하셨던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며 "피트니스 선수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 싫었을 뿐, 나를 어떻게 부르셔도 상관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신한 아내에게 ‘약물 사용자는 성불구라는 데 친자가 맞느냐’며 비난을 하는 분들도 있다.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비판만큼은 삼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