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늑대새끼, 사향고양이, 뱀, 고슴도치, 꿩까지. 중국 우한 폐렴의 진원지로 지목된 화난(華南) 수산물도매시장에서 팔린 것으로 알려진 품목 들이다. 수산물도매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중국에선 약 100종의 살아있는 동물과 가금류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야생동물을 먹는 문화는 중국에서는 하나의 정체성 이지만, 이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과학원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의 시정리(石正丽) 연구원은 "예비역학 분석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시장의) 야생동물에서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며 "진짜 문제는 동물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야생동물을 먹는 식습관)에 있다"고 말했다.

중국 광저우의 한 시장에서 사향고양이가 판매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우한 폐렴의 원인인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는 야생동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의 세계적 전문가로 중국 정부 대응 대책반장인 중난산(鍾南山) 중국국가호흡기병 연구소 소장은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출처는 아마도 대나무 쥐나 오소리 같은 야생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의 숙주로 화난 시장에서 팔렸던 품목 중 하나인 ‘뱀’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한 논문도 나왔다. 과학 정보포털 '유레카 얼러트'(EurekaAlert)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대, 광시대, 닝보대 의료진은 우한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로 뱀이 유력하다는 결론을 담은 논문을 국제학술지 바이러스학저널(JMV)에 게재했다.

중국에선 지난 2003년 사스 사태 이후 베이징, 선전, 광저우 등 상당수 도시 주요 시장에서 살아있는 가금류와 동물 판매를 금지 했지만 일부 시장에서는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SCMP는 광저우에 있는 한 시장 상인이 살아있는 닭을 사겠다고 하자 뒷문에서 가져와 판매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중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감염자 대부분과 사망자 전원은 우한이 위치한 후베이성에서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화난 수산물도매시장에서 일을 하거나 근처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수산물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게와 새우 등 실제 해산물이 주력 품목이지만, 살아있는 야생동물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한 산업통상진흥청은 작년 9월 공고에서 정부가 호랑이, 개구리, 뱀, 고슴도치 등 살아있는 동물을 파는 노점 8곳을 검사하고 야생동물 사업 허가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시정리 연구원은 "이런 전염병을 예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야생동물을 멀리하고, 사냥을 거부하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나 농장 등과 섞여 사는 습관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동물을 먹는 문화가 중국에선 문화, 경제, 정치적으로 뿌리가 깊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의 정치·경제학자인 후싱두(胡星斗)는 "중국인들에게 굶주림은 가장 큰 위협이자 역사적으로 잊을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 때문에 서방국가들이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동안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1차적 욕구로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굶주림이 중국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희귀한 동식물에서 나온 고기, 장기 등을 먹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고도 했다.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의 2006년 발표에 따르면 중국 본토 16개 도시에 사는 2만4000명을 조사한 결과 약 70%가 한해 동안 야생동물을 먹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비슷한 조사 때는 51%였는데 먹지 않는다는 사람의 비율이 크게 확대 된 것이다. 2003년 사스 사태의 영향이다. 그러나 SCMP는 조사 대상자의 30%는 여전히 야생동물을 먹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