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우리말 중에 ‘가만히’라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가만히'라는 말의 사전적 뜻을 찾아보면 (1)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 없이 (2)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손을 쓰지 않고 그대로 (3)마음을 가다듬어 곰곰이라고 풀이돼 있다. 감추어져 있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비밀스럽게, 개인적으로, 조용히, 넌지시란 의미라고도 나온다.
초등학교 시절 자주 부르던 노래 중에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부르던 윤석중 작사의 노래에서 '가만히'라는 말이 유난히 내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있다.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보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조용히' '고요히'라는 말하고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만히'라는 말. 왠지 심오하면서도 정겹게 여겨지는 이 말이 나는 참 좋았다.
누가 심하게 남을 흉보거나 잘못된 정보를 흘리며 뒷담화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곧잘 "어? 그게 아닌데? 좀 가만히 있어 봐요"라고 하기도 하고, 서로 대화가 안 되거나 논리가 안 통해 어려움을 겪을 적에도 "잠깐 가만히 있어 보세요" 한다. 어떤 일을 바로잡아야 할 적에 체면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옆에서 "제발 좀 가만히 있지 말고 어떻게 좀 해보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침묵을 강조하는 수도원에서 반세기 이상 살다 보니 시시로 "가만히!" 하고 스스로에게 주의를 주거나 주문하는 일도 갈수록 더 많아진다. 어떤 자리에서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싶은 찰나에, 옆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잔소리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 '가만히 있으세요'라고 주문하며 마음을 추스르면 이내 평화가 찾아온다.
앞으로도 ‘가만히!’라는 말을 더 많이 사랑하며 은은한 내적 기쁨을 키워가고 싶다. 가만히 숨어 있기도 하지만 필요할 땐 가만히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랑의 천사가 되어보리라 다짐한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봄처럼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