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학 지휘자·영남대 교수

학창 시절 지휘 레슨을 받을 때다. 선생님이 러시아어로 '소리'에 해당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답은 '즈북(zvuk)'. 낮고 굵은 목소리로 성대를 긁듯 "즈북, 즈북" 하면서, 이 단어를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음악에 대한 느낌이 오지 않느냐고 하셨다. 독일어로는 '클랑(Klang)'이라고도 했다. 클랑클랑! 시곗바늘이 째깍째깍, 작은 종이 딸랑딸랑 하는 듯한 소리에 시간과 규율을 잘 지키는 독일 사람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밝고 명랑한 모차르트 음악에 특히 잘 어울린다. 불어로는 '소노리테(sonorité)'. 프랑스 음악의 우아함과 모호함이 담긴 듯하다. 영어로는 '사운드(sound)'다. 이 단어엔 소리란 뜻 말고도 '건강한' '온전한'이란 의미도 있는데, 영미 음악이 꼭 그렇다.

우리말은 어떤 단어가 우리 음악의 특징과 정서를 담고 있을까? 아무래도 '소리'란 단어는 아쉽다. 나름 고민 끝에 찾은 답은 '울다'. 우린 아플 때도 울지만 새가 노래할 때도 '운다'고 한다. 고수는 북을 '울리며' 연주하고, 슬픈 노래는 심금을 '울린다'. 울다란 단어는 한국적 정서인 한(恨)과도 통한다. 가슴의 응어리는 한바탕 '울어서' 풀어야 한다.

우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신나게 노래하고, 삼삼오오 모이는 것도 모자라 전국민이 거리에서 쉴 새 없는 떼창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TV 채널마다 다양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폭발적 인기를 끌고, 당당히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K팝이 전 세계 수많은 팬의 가슴을 울린다. 펑펑 터트린다. 기껏 찾은 '울다'란 단어에 모두 얹기엔 무리인 현상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한과 흥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이제 곧 새해가 밝는다. 슬픈 일, 한맺힌 일은 다 날려버리고 흥겹고 신명나는 2020년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