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2년 6·13 지방선거부터 전자 개표 방식을 도입했다. 현재까지는 20대 총선에서 사용된 33.5㎝ 투표용지가 역대 최장 기록이다. 당시에는 21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지만 투표지 분류기가 소화할 수 있는 한계치(34.9㎝) 이내였기 때문에 전자 개표가 가능했다. 지난 19대 총선 때 비례대표 정당 투표용지는 31.2㎝, 15개 정당이 후보를 낸 18대 총선 때는 23.2㎝였다.
그러나 연동형비례제가 반영된 선거법 개정의 영향으로 내년 총선에서 24개 이상의 군소 정당이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선관위에 등록한 정당만 34개, 창당준비위원회에 신고를 마친 예비 정당 16개까지 포함하면 도합 50개에 달한다. 정치권에선 총선이 임박할수록 군소 정당 수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23일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이 날치기 처리되면 비례를 노리는 100개 이상의 정당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다. 100개 정당을 가정하면 길이는 무려 1.3m에 달한다"며 가상 투표용지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현재 전자 개표 시스템으로는 유례없이 길어질 투표지를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비례대표 투표지에 대해서는 20년 만에 수개표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일일이 수개표를 한다면 21대 총선의 최종 결과가 다음 날이 돼서야 나올 수 있다. 투표용지가 짧은 지역구의 개표 결과가 일찌감치 나온 가운데 각 정당들은 비례대표 투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새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 의석수와 연동형 비례 의석(30석)이 서로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수개표를 하게 된다면 개표 인원을 최대한 동원해야겠지만 언제 개표가 완료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정당 득표율 3% 이상 정당만 연동형 비례 의석을 배분받기 때문에 검표(檢票)에도 종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 총선 후보자 등록일인 3월 27일까지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정당이 몇 개인지 가늠할 수 없는 안갯속 상황이라, 선관위 입장에선 투표지 분류기를 전면 교체하기 위한 관련 예산 확보도 난망하다.
한국당은 민주당과 범여권 군소 정당이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방침이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비례대표 의원을 직접 뽑아야 한다는 직접선거 원칙과 지역구 의원이 많이 당선될수록 비례대표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