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바닥에서 나무 세 그루가 기둥처럼 솟아난다. 이윽고 가지가 갈라진다. 세포가 분열하듯 갈라지는 가지들이 머리 위에서 서로 얽혀 천장을 이룬다. 경북 상주 '세그루집'은 컴퓨터로 재단한 목재 구조물 4006개를 이런 모양으로 짜맞춰 뼈대를 세운 주택이다. 올해 한국건축가협회상 특별상인 엄덕문건축상과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 대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나무 세 그루의 줄기가 기둥을, 가지는 천장을 이룬 형태의 ‘세그루집’ 내부. 전통 건축의 기둥·공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건축면적 68.58㎡(약 21평)짜리 이 특이한 집엔 건축가의 오랜 고민이 배어 있다. 기둥·천장 일체형의 구조는 동아시아 전통 건축의 공포(栱包·지붕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넣는 나무 구조물)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한 것이다. 건축가가 제시한 '한국적 현대 건축'의 판타지다. 설계자인 한양대 건축과 김재경(42) 교수는 "전통 건축이 단절되지 않고 한국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 상상해 봤다"면서 "전통 한옥이 기둥과 보라는 굵은 선(線)의 건축이라면 세그루집은 가늘고 무수한 선이 빚어낸 공간"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단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 건축엔 전통과 현대의 연결 고리가 빈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만든 공간의 원형을 전통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가 비논리적이라고 본다. "예컨대 우리의 마당은 김치도 담그고 빨래도 말리는 다목적 여분 공간인데, 용도가 분명한 공간을 만들어놓고도 마당을 빌려왔다고 하는 식이죠."

세그루집을 설계한 한양대 건축과 김재경 교수.

이런 식으로는 세계 무대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걸 미국 유학 시절 깨달았다. "한국 건축가가 특강 와서 한옥에 빗대 자신의 건축을 소개했어요. 외국 친구들 반응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 둘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더군요. 모더니즘 건축을 왜 한국 전통 건축에 연결하느냐고요." 그는 "연결 고리가 없으니 자꾸 과거를 미화하게 된다"고도 했다. "휜 나무를 그대로 쓴 기둥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미(美)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건 좋은 목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는데도 말이죠."

전통을 감상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분석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야 전통을 논리적으로 접목한 한국적 현대 건축을 세계에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귀국 후 한양대에 부임하면서 그가 주목한 것이 공포였다. "공포는 지붕과 기둥을 연결하는 기술적 해법인 동시에 동아시아 건축의 상징적 장식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유리벽으로 천장 구조를 드러내고 그 아래로 담을 두른 세그루집 외관.

국내와 일본·중국을 답사하며 본격 연구에 들어갔다. 지붕의 하중이 공포를 거쳐 기둥에 수직으로 전해지는 힘의 흐름을 수학적으로 도식화해 조립식 목재 구조물을 만들었다. 이걸 조립해 만든 작품 '나무'로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건축가 프로그램에서 최종 후보 5팀에 들었다. 그해 목조건축대전 본상도 받았다. 상주 세그루집은 연구를 실제 건물로 구현한 첫 결과물이다. 이런 집을 지어 본 시공사가 없어서 시공도 직접 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만드는 방식부터 새로워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비슷한 방식으로 경북 경주에 미술관을 겸한 한의원을 설계하고 있다. 규정상 한옥의 외관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내부는 전통 한옥과 다른 형태라고 한다. 김 교수는 "누군가 자꾸 새로운 것을 들쑤셔야 한국 현대 건축이 영토를 넓히고, 고유한 색깔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