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몇 년 전부터 진료실에 오는 이들 중 '자존감'이란 단어를 말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저는 자존감이 매우 낮아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자가 진단을 하는 이들도 꽤 있다. 사실 자존감은 정신의학에서 분명하게 정리된 개념이 아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등 부정적 질병을 주로 다루는 학문에서, 자존감 같은 주관적이고 긍정적인 상태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환자들이 낮아진 자존감을 말할 때마다 정확하게 대답해줘야 하는 나로서는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관련 논문을 수없이 찾았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는 자존감 열풍이 한차례 휩쓴 바 있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자존감을 '과도한 자신감 높이기' '칭찬과 인정'이라는 차원으로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존감 높이는 방법을 들어보면, 많은 경우 이와 비슷한 함정에 빠져 있었다. 이런 오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짜 자존감과 진짜 자존감'이라는 구도로 자존감을 설명한 것이 내 책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지와인)이다.

책을 읽은 한 지인이 펑펑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오래 만나온 사람이었는데, 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그토록 힘들어하고 있을 줄 몰랐다. 그 울음을 좋은 신호로 해석했다. 이제 그 관계를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이다.

'진짜 자존감'을 가지는 데 책이 도움이 될까. 당연히 된다. 술자리 친구들의 위로는 내일 출근하면 사라진다. 그보다는 의지력과 사고력을 높일 때 자존감도 높아진다. 이 책은 결국 생각의 힘과 마음의 힘을 연결하는 방법을 정리한 것이다. 책을 쓰면서 의사로서의 나의 자존감도 단단해졌다. 이제 환자들에게 자존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