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전방에 터널이 있습니다. 좌측 첫 번째 차로로 주행하세요. 다음 안내까지 계속 직진입니다. 약 사백 미터 앞, 경로상 최저가 주유소입니다. …. 휴대전화 아가씨, 살뜰하기도 해라. 엉성할 때가 있기는 하다. “교통 정보를 반영하여 새로운 경로가 탐색되었습니다.”

반영했다 했으면 "경로를 탐색했습니다" 해야 앞뒤가 맞지. 주어가 헷갈리며 능동형과 피동형이 오락가락했다. 사실 길도우미 탓하기 멋쩍다. 신문에서도 이런 잘못 자주 보지 않는가. 이른바 호응(呼應)이 이뤄지지 않은 문장.

'혁신 성장 프로젝트는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고자 기획됐다.' 역시 능동('육성하고자')과 피동('기획됐다')이 뒤섞여 어색하다. 형식상 주어인 '프로젝트'에 얽매인 탓이다. 숨어 있는 주어이자 육성의 주체(프로젝트를 기획한 조직)를 감안해 '기획했다'로 써야 자연스럽다.

'이사 준비하던 아들이 전화가 왔다.' 말로나 주고받는 비문(非文)을 신문에서 보는 씁쓸함이란…. 주어와 술어(述語)가 어울리도록 '전화했다' 해야 맞지 않는가.

토씨와 술어가 서로 삐끗하기도 한다. '홈페이지의 작은 결혼 코너에선 소박한 결혼식 방법 등이 있다.' '에서'는 동작성이 있는 말이 따라야 하는데, 이 문장의 '있다'는 그게 아니다. 농구 하다 느닷없이 축구처럼 발로 패스하듯, 반칙! '코너에는' 하거나 '코너에선 ~ 방법 등을 소개한다' 해야 짝이 맞는다.

'재단 소유 토지가 이사회 몰래 담보로 잡혔다.' 부사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않으면 이렇듯 문장이 이상해진다. '몰래'는 능동적 행위와 어울리니 '토지를 몰래 담보로 잡혔다('잡다'의 사동사)'가 옳다.

길도우미는 쉬는 법이 없다. “잠시 후 오른쪽 방향입니다. 삼백 미터 앞, 시속 60킬로미터 단속 구간입니다.” 오른쪽에 ‘방향’의 뜻이 이미 담겼는데 ‘오른쪽 방향’은 또 뭐람. 핀잔하느라 신경 못 쓴 사이 시속 69㎞. 휴~. 한마디 나오게 생겼다. 따지더라도 때를 가리세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