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하는 래퍼라면 학교는 진작 때려치우고 껄렁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건방진 말투는 예사.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교복을 입고 오디션을 보고, 중간고사가 끝나야 가사를 쓰는 10대 래퍼들이다. 래원(18·본명 장래원), 서동현(16), M1NU(16·본명 김민우), 베이니플(16·본명 전현준)은 지난달 종영한 '쇼미더머니' 시즌8에서 어른들도 줄줄이 탈락한 예선을 통과한 10대들. 창의력 넘치는 가사와 톡톡 튀는 개성으로 단연 주목받았다.
네 사람이 함께 만든 유일한 곡 '급SICK'은 지난달 음원차트 30위권에 오르며 쇼미더머니8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 됐다. 곡명을 지은 서동현은 "우리 모두 급식을 먹고 학교 다니는 학생이지만 실력 있으니 무시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SICK'이라는 단어가 외국에서는 쿨하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넷이 인기를 끈 이유는 어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독특한 가사와 스타일 덕분이다. 대원외고 1학년인 서동현은 싱잉랩(노래하듯이 하는 랩)으로 프로 래퍼들을 제치고 최종 3위까지 올랐다. 래원은 직접 만든 곡 '쇄빙선'에서 '알바비를 모은 돈으로/쇄빙선 하나를 샀어/빙판을 가르며 나아가자 했지만/나 혼자 갈아탔어' 같은 유쾌한 가사로 호평받았다. 베이니플과 M1NU도 '21seventeen'이라는 곡으로 팬들을 끌어모았다.
아이돌이 대세인 10대들 사이에서 랩을 선택한 이유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래원은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독서실에서 랩 가사를 끄적거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베이니플은 "빅뱅을 좋아해 음악을 시작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로 가사가 되는 것이 힙합의 좋은 점"이라고 했다.
어엿한 소속사를 가진 래퍼들이지만 청소년이라는 건 변함없다. 서동현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시험 끝나고 하루이틀간 바짝 가사를 쓴다"며 "고급 음향기기를 살 수 없어 이어폰에 달린 마이크로 녹음한 적도 있다"고 했다. M1NU는 "미성년자라 촬영 때도 10시 이전에 반드시 집에 가야 했다"고 했다.
10대만의 고민도 깊었지만 의젓했다. "음악은 불안정한 생업이니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안정적이라는 것의 기준은 마음의 안정이라고 생각해요. 회사를 다니지만 마음이 불안하다면 차라리 좋아하는 랩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