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 자차를 사고 현장에 방치했다면, 연락처를 남겼더라도 '뺑소니'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사고후미조치 부분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일러스트=이철원

A씨는 지난해 2월 경기도 용인의 한 이면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주차돼 있는 승합차를 들이받은 뒤 현장을 떠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또 사고 이후 자신의 집으로 출동한 경찰관의 음주 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사고가 난 곳은 차량 2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도로였다. 이에 A씨는 사고가 난 이후 자차가 더 움직이지 않자 피해차량 옆에 나란히 세워둔 뒤 시동을 끄고 전화번호만 적은 메모지를 유리창 앞에 둔 채 귀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신고를 받아 출동한 뒤 업체에 연락해 해당 차량을 견인해야 했다.

1심은 A씨가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교통사고 발생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그러나 "피해가 경미하고, 도로교통법상 교통사고 발생 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연락처를 적은 종이를 차량이 붙여뒀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도 다 했다"며 항소했다. 2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무죄로 보고 벌금 300만원만 선고했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A씨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사고 후 조치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사고 현장을 떠날 당시 교통상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는 등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