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민항구의 회원제 할인점 코스트코. '핑안 코스트코 회원 신용카드'라고 적힌 빨간색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방문자의 회원 가입을 도와주고 있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회원카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육류 식품 코너가 가장 붐볐다. 구운 닭고기는 사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한 명당 한 팩으로 구매가 제한됐다. 이곳은 미국 유통 기업 코스트코가 8월 27일 상하이에 문을 연 중국 1호점이다. 영업 첫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개장 4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당시 매장 셔터가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이 바닥 틈새로 앞다퉈 기어들어가는 모습과 마오타이 술과 에르메스 백 등 고가 할인 제품을 먼저 집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코스트코에 따르면, 첫날 13만9000명이 연회비 299위안(약 5만원)을 내고 회원 가입을 했다. 9월 말 기준 회원수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실패 맛보고 탈출하는 와중에 중국 진입하는 외국 유통 기업들
코스트코의 중국 매장 설립은 먼저 진출한 외국 유통 대기업들이 잇따라 쓴맛을 보고 중국에서 발을 빼는 시점에 이뤄졌다. 프랑스 카르푸는 올해 6월 중국 유통 기업 쑤닝닷컴에 중국 법인 지분 80%를 48억위안(약 8000억원)에 매각했다. 카르푸는 1995년 서양 유통업체 중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해 중국 전역에 210개 매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수년간 적자가 계속되면서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앞서 작년 4월 스페인 수퍼마켓 체인 디아도 쑤닝그룹에 중국 내 수백 곳의 매장을 넘기고 15년 만에 중국 시장에서 손을 뗐다.
독일 유통 기업 메트로는 지난달 중국 우메이(우마트 운영사)에 중국 내 매장 97개를 포함한 중국 사업부를 매각했다. 메트로는 매각 대금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와 새로 만들 합작사 '메트로 우마트 차이나' 지분 20%를 받는다. 또 다른 독일 유통업체 리들은 올해 4월 중국에서 운영하던 온라인 매장 세 곳의 운영을 중단하며 중국 사업을 접었다. 작년 말엔 미국 백화점 메이시스가 중국에서 완전 철수했다. 메이시스는 2015년 상하이에 있던 오프라인 매장을 없앤 후 온라인 사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작년 6월 중국 공식 온라인 웹사이트를 폐쇄한 데 이어, 12월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티몰 온라인 스토어 운영도 중단했다. 앞서 한국 대형 마트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전 세대의 탈출 속에서도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또다시 중국 시장을 두드리는 것은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소비자 파악 후, 오프라인 진출
코스트코가 중국에 오프라인 매장을 연 것은 올 8월이지만, 온라인에선 2014년부터 중국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해 왔다. 코스트코는 알리바바 티몰에서 온라인 매장을 운영하며 중국 소비자의 소비 패턴과 트렌드를 파악했다. 수년간 쌓인 빅데이터를 분석해 주력 구매층이 누구인지, 이들이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등을 가려냈다. 코스트코는 내년엔 상하이 동쪽 금융·상업지구 푸둥(浦東) 지역에 두 번째 매장을 열 예정이다.
독일 할인 마트 체인 알디(ALDI)도 '선(先) 온라인, 후(後) 오프라인' 전략을 썼다. 알디는 2017년부터 알리바바 티몰에서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하다가 올해 6월, 상하이에 중국 1·2호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냈다. 알디는 이 매장들을 '파일럿(시험용)' 매장이라고 부른다. 드니스 함베르거 알디 차이나 매니징디렉터는 "우리는 중국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고려해 다양한 판매 전략을 테스트하고 고객 반응과 테스트 결과에 따라 전략을 수정해 가려고 한다"고 했다.
알디가 상하이에서 첫 매장을 낼 지역으로 징안구와 민항구를 선택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부다. 중산층 주거지구와 업무지구가 겹치는 곳에 매장을 열어 인근 거주자와 직장인을 함께 겨냥했다.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적당한 수입품과 중국에서 생산된 현지 신선식품 위주로 제품을 구성했다. 매장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차오하이리(曹海麗)씨는 "바로 먹거나 간편히 조리할 수 있는 식품이 많고 가격도 저렴해 퇴근 후 자주 온다"고 했다. 리서치 회사 민텔 차이나는 보고서에서 "카르푸가 실패한 것도 비슷한 제품을 파는 외국 경쟁사와의 가격 경쟁에만 골몰했을 뿐, 중국인의 소비 행동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오프라인 통합한 모바일 혁신
알디 매장에선 결제할 때 직원이 있는 계산대에 줄을 설 필요가 없다. 무인 기기에서 소비자가 직접 제품 바코드를 스캔하고 알리페이·위챗페이와 같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이용해 결제한 후 나가면 된다.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위챗의 알디 미니 프로그램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집으로 즉시 배송도 해준다.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방식은 중국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성(盒馬鮮生)의 운영 방식에서 상당 부분 벤치마킹한 것이다. 허마셴성은 데이터와 스마트 물류 기술을 이용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을 통합했다. 가장 큰 특징은 허마셴성 앱에서 주문한 물건을 빠르면 30분 안에 배송하는 서비스인데, 이를 위해 매장이 물류센터 역할을 겸한다. 매장 천장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설치돼 있다. 소비자가 앱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직원이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장바구니에 제품을 담은 후 이 장바구니를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배송센터로 보낸다. 앱에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적용해 같은 제품이라도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모바일 결제 등 기술 융합 덕분에 신(新)유통 매장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덜란드 수퍼마켓 체인 스파(Spar)도 모바일 유통 혁신에 올라타 중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스파는 작년 말 기준 중국에 353개 매장을 운영하며 중국에서 연매출 15억유로(약 1조9500억원)를 기록했다. 모바일 결제가 전체 거래액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알리바바·알디·코스트코… 왜 다들 상하이서 첫단추?]
독일 저가 할인점 알디는 지난 6월 중국 내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 도시로 상하이를 택했다. 상하이 알디 매장은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서도 첫 매장이다. 알디는 지난달 26일 상하이에 5번째 매장을 열며 상하이 집중 공략에 나섰다.
알디가 콘셉트를 차용한 중국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마트 허마셴성(盒馬鮮生)도 2015년 첫 매장을 상하이에 열었다. 알리바바의 본사는 상하이에서 고속철로 약 1시간 거리인 저장성 항저우에 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의 최강자인 알리바바는 오프라인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상하이부터 파고들었다. 미국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의 중국 유일 매장도 상하이에 있다. 상하이 인구 2400만 명 중 민항구 코스트코 매장에서 차로 45분 이내 생활권에 사는 사람이 700만 명에 달한다.
유통 업체들이 상하이에 몰리는 이유는 뭘까. 리처드 창 코스트코 아시아 수석부사장은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상하이 거주자의 꽤 높은 수준의 가처분소득을 고려할 때 중국 시장 전망을 낙관적으로 본다"고 했다.
상하이의 높은 소득 수준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31개 성 거주자의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은 2만2882위안(약 380만원)이었다고 중국 인민망이 보도했다. 그중 상하이 시민의 1인당 평균 가처분소득이 5만2292위안(약 866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1인당 가처분소득이 5만위안을 넘은 곳은 상하이와 베이징 두 곳뿐이다. 1인당 평균 소비 지출도 상하이가 3만3557위안으로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