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100대 문제예산' 문건 입수... "내년 예산 최소 5조 삭감" 공언
"'통계 왜곡 일자리' 2조5000억 삭감⋯ 외교·통일·군사 분야도 감액"
예산안, 12월 초 선거법·사법제와 동시표결 전망⋯여야 충돌 예고
자유한국당이 최근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분석해 총 5조원대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내용의 100대 문제사업 목록을 만든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입수한 520쪽 분량의 한국당 '2020 회계연도 예산안 100대 문제사업'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등 현 정부 경제 정책뿐 아니라 산업, 외교, 국방 등 전 분야에 걸쳐 예산 삭감을 공언했다.
사상 첫 2년 연속 9%대 증가한 513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심의는 28~29일 열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를 시작으로 약 한달 간 이어진다. 한국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 정책의 실패를 '돈'으로 막아보려는 시도는 반드시 저지하겠다"며 "예산 심의를 정책 대(大)전환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예산안 원안 사수와 함께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선거법 개정안을 일괄 처리한다는 방침이어서 한국당과 충돌이 예상된다.
◇한국당, '재정 투입 일자리'에서 2조5000억원 삭감 계획
한국당은 '100대 문제사업' 문건에서 각 부처의 일자리 창출 사업 상당수를 "통계 왜곡용 재정 일자리 사업"이라며 총 2조5000억원 가량을 줄이겠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의 경우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에서 363억원을 삭감하고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과 국가기록물 정리 사업도 각각 148억원과 11억원씩 낮추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적어도 올해 수준에서 해당 사업들을 동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년에 더 늘린 부분만큼은 제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산림청의 숲 가꾸기 사업과 해양수산부의 '바다환경 지킴이'도 "대표적인 세금 일자리"라며 각각 850억원과 6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 상공인을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을 내년에 2조1647억원 편성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예비타당성 조사도 거치지 않은 사업을 정부가 출구전략도 없이 3년째 편성해왔다"며 "전액 삭감한 뒤 국회에서 재추진 여부를 원점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서울시의 소상공인 전용 결제 시스템 '제로페이' 지원을 위해 편성한 122억원에 대해서도 한국당은 "수많은 예산 낭비 논란에도 또 혈세를 낭비하려 하고 있다"며 전액 삭감 방침을 세웠다. 또 중기부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IT(정보기술) 기기를 통한 주문 결제와 자금 관리 등을 보급하기 위해 편성한 '중소기업 스마트서비스 지원(90억원)'과 '스마트 상점 기술보급(20억원)' 사업도 모두 깎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이 사업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이후 급격한 자동화를 겪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단순 업무 일자리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 수 있다"며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스마트 기술이 필요한 사업주들은 현재 민간에서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 한국당 "외교부 '한일 관계', 통일부 '남북 교류' 예산도 점검"
한국당은 외교, 통일, 국방 분야에서도 대규모 삭감을 요구할 계획이다. 외교부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와의 교류 협력 강화' 분야 가운데 '한·일 신시대 복합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올해(12억원)보다 39억원이 늘어난 51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증액분(39억원) 전액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이 예산은 일본 내 10개 공관에서 한일관계 심포지엄·포럼을 열거나 각계 각층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행사 등에 쓰인다. 그러나 한국당은 "정부가 스스로 대일관계를 악화시켜 놓고 이제와 예산을 좀 쓴다고 관계가 정상화되느냐"며 "국민들은 일본 관광이나 제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일본 현지 공관에서는 외화를 낭비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외교부가 올해 1억원에서 내년 23억원으로 대폭 늘린 '국(局)별 외교전략 및 외교전략 총론 수립' 사업에 대해서도 "결국 외교부 내부에서조차 '전략이 없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세부 사업 가운데 해외 출장 및 회의 등 예산 17억원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대북 사업에 쓰이는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 가운데 무상 경협기반 사업 예산은 편성된 2151억원 가운데 절반인 1075억원을, 융자 경협기반 사업은 2520억원 전액을 각각 삭감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작년말 예산안 통과 때 남북 철도·도로 사업 실태조사와 사업 계획을 국회에 보고토록 국회가 의결했는데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또한 지난 2년간 전액 미집행된 융자 사업은 현재 남북관계상 내년에도 집행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당은 2028년까지 진행중인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사업 보라매(KFX)에 대해서도 예산 편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삭감에 나설 방침이다. 보라매는 총사업비 8조8000억원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20%(1조7000억원)를 부담하기로 돼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측이 올 상반기까지 3000억원 가량을 미납하자 이를 정부 예산으로 잡은 것은 삭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우선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납부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당은 현 정부 대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에 대해서도 '예산'을 통해 속도 조절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특위의 '국가 중장기 발전전략 및 정책연구' 예산 11억원 등과, 새만금 태양광 보급을 위한 '신재생 에너지 산업 전문인력 양성센터 구축 사업' 5억원을 각각 삭감하겠다"고 했다.
◇ 선거법·사법제와 예산안 일괄 처리 난항 겪을 듯
한국당이 대대적인 예산 삭감 계획을 밝히면서 여야가 연말 예산 정국에서 강하게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도 확장 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확장 예산 편성을 강조한 상황에서 여당인 민주당도 정부 예산안 원안 사수를 위해 총력 방어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 악화로 한국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므로 513조원대의 수퍼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여당과, 현 정부 정책실패를 예산으로 땜질하려 한다는 한국당이 정면 충돌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여당이 공수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도 예산안과 함께 일괄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예산안 삭감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예년보다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법안도 문제가 큰데다 잘못이 판명난 정책은 수정하고 가야 한다"며 "정책 대 전환을 위해 불필요한 예산은 상임위회와 예결위 단계에서부터 적극 저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