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금요일) 오후 6시 10분쯤 강원 원주혁신도시 내 한 공공기관 주차장에 버스 6대가 줄지어 섰다. 서울 잠실, 남부터미널 등 4곳, 경기 성남 등 2곳으로 가는 버스다. 주차관리 직원은 "평일엔 5대인데, 금요일엔 주말 부부 직원까지 서울로 올라가 한 대를 증차한다"고 했다. 버스가 떠난 6시 30분, 공공기관 밖으로 나가 혁신도시 내 번화가로 통하는 '혁신로' 일대를 돌아봤다. 맞은편 만두가게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사장 박모(51)씨는 "직원들이 점심은 구내식당서 먹고, 저녁엔 서울로 올라가 버린다"며 "금요일 저녁은 매출이 주중보다 30%나 줄고 주말은 반 토막"이라고 했다. 한 상점 걸러 한 상점씩 '임대 문의' '상가 파격 할인' 현수막도 붙었다. 그걸 보며 주민 김모(80)씨가 "사람들이 물건도 안 사는지 거리가 휑하다"며 "저 맞은편엔 상가 건물이 통으로 빈 곳도 많다"고 했다. 7월 원주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혁신도시 내 상가 공실률은 58%에 달한다.

지난 4일 오후 8시쯤 강원도 원주혁신도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맞은편 상가에 ‘매매·임대’ 광고가 붙어 있다. 원주혁신도시의 상가 공실률은 58%에 달한다.

혁신도시는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다.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과 함께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시작됐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 성장을 이루자'는 취지였다. 2007년 10개 혁신도시가 선정된 이후 올해 6월까지 112개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주했다. 그러나 혁신도시로 옮겨간 직원 중 가족과 함께 지역에 정착한 이는 10명 중 4명도 안 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경욱(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월 기준 전국 혁신도시에서 일하는 공공기관 직원은 4만923명이다. 이 가운데 배우자·자녀 혹은 독신이지만 부모와 함께 이주한 직원은 1만5675명. 가족 동반 정착률이 38.3%다. 31.3%는 가족과 떨어져 직원 1명만 홀로 온 이른바 '기러기 엄마·아빠'이고, 4.7%는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매일 출퇴근한다. 나머지는 미혼·독신이다.

가족 동반 정착률은 충북(20.6%), 강원(29.9%), 경북(30.7%) 순으로 낮았다. 서울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충북은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직원이 전체의 37.7%였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64.2%), 정보통신산업진흥원(60.4%), 한국소비자원(53.2%) 등은 절반이 넘는 직원이 매일 수도권에서 출퇴근한다. 13개 기관이 내려간 원주에서만 현재 37대의 통근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정부는 이주기관 직원들에게 혁신도시 내 아파트도 우선 분양했다. '가족과 내려와 정착하라'는 의미였다. 올해 6월까지 혁신도시 내 1만1503채가 특별 분양됐다. 그러나 이 중 1364채(11.9%)는 입주도 하기 전에 되팔렸다. 주택 전매 비율은 부산이 24.6%로 가장 높았고, 제주(16.7%), 경남(15.1%)이 뒤를 이었다. 부산과 제주는 최근 10년간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 중 하나다. 민경욱 의원은 "현지에 터전을 마련할 생각도 없으면서 특혜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차익을 남기고 되판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했다.

그나마 혁신도시로 이주한 사람도 10명 중 7명꼴로 수도권이 아닌 주변 지역사람들이다. 송언석(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7년(2012~2018)간 전국 혁신도시에 18만2127명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 중 13만9786명(76.8%)이 구도심과 주변 지자체에서 유입됐다. 수도권에서는 2만8717명(15.8%), 타 시·도에선 1만3624명(7.5%)만 유입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여당은 공공기관을 추가 이전하는 내용의 '혁신도시 시즌2'를 추진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내년 3월 혁신도시에 대한 성과 평가 결과를 보고 공공기관 추가 이전에 대해 결정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