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에서 최하층 꼬리칸 사람들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만을 먹고 산다. 바퀴벌레는 아니겠지만 곤충을 일용할 양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하여 커티스(크리스 에번스 분)는 보안 전문가 '냄쿵 민수'(남궁민수·송강호 분)를 깨워 열차의 꼬리부터 칸칸이 전진하지만, 피로 얼룩진 희생을 감수하면서 나아가는 길에서 얻는 것이라고는 뼈아픈 현실의 자각뿐이다. 예상이야 했지만 빈부 격차가 무엇보다 먹을거리-음식이라 일컬을 수도 없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8년 가까이 유일한 식량이었던 단백질 블록을 거대한 바퀴벌레로 만든다는 사실에서 격차의 인식은 절정에 달한다. 생존을 위해 열차 운행 개시 후 한 달 동안 감수해야만 했던 식인의 대안이 징그럽디 징그러운 바퀴벌레였다니. 온통 하얀 바깥 세상, 즉 설국과 또렷하디 또렷한 대조를 이루는 어둡고 칙칙한 열차 뒤 칸의 세계에서조차 단백질 블록은 원재료인 바퀴벌레의 등껍데기만큼이나 윤택한 검정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바퀴벌레가 아니라면 거부감이 좀 덜했을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곤충을 먹어왔다. 어린 시절이었던 1980년대에는 규모가 좀 컸던 동네 수퍼마켓에서 깔끔하게 포장한 메뚜기 볶음을 팔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중학교 때는 급우가 메뚜기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 왔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바람에 먹기를 포기하고 한 마리씩 돌린 적도 있다. '스트리트 푸드'의 위상은 이제 내려놓았지만 번데기 또한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통조림을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번데기는 누에나방의 유충으로서 양잠의 산물이다. 누에가 성장 과정을 몇 기 거쳐 번데기로 변태하면 몸을 감싼 고치는 비단 원료로 취하고 남는 걸 먹는다.

정도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의 메뚜기나 번데기도 결국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처럼 어려웠던 시절의 궁여지책에 불과한 건 아닐까? 먹을 것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요즘처럼 차고 넘치는 시대에 굳이 찾아 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미식에 쓰이는 곤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멕시코의 개미 알 에스카몰(escamol)이다. 나무뿌리 주변에 알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흙째 캐내어 체로 내리면 반투명한 흰색 쌀알 크기 알을 얻는다. 버터에 볶거나 오믈릿에 넣어 먹는데 코티지치즈와 비슷한 맛과 질감이다. 나비와 나방 235종, 딱정벌레 344종, 개미, 벌, 말벌 313종 등 전 세계적으로 곤충을 1000~2000종 먹는 가운데 놀랍게도 바퀴벌레 자리마저 있다.

설국열차 카페에서 초밥을 맛보는 꼬리칸 사람들.

식재료가 넘쳐나고 음식 쓰레기도 그에 비례해 넘쳐나는 시대, 그러나 연명식도 별식도 아닌 일상 식재료로서 새로이 곤충을 받아들여야만 할 날이 의외로 빨리 찾아올 수 있다. 무엇보다 고기를 먹기 위한 동물의 존재 자체가 환경에 큰 부담을 끼치는 탓이다. 사육부터 도살, 유통을 비롯한 전 과정에서 물과 전기를 비롯한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석유 연료 소비로 귀결한다. 축산업은 인류가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약 15%를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 소 15억 마리를 사육하는 탓이다. 더군다나 같은 양의 식물성 단백질보다 생산하는 데 물은 4~25배, 땅은 6~17배 더 든다. 최악으로는 멸종까지 가능하다는 돼지열병처럼 한순간에 육류 자원이 소멸될 가능성도 현실의 사정권에 들어와 버렸다.

이렇게 마음 놓을 수 없는 현실에서 곤충은 이미 대안 단백질로서 가능성 확인의 수준을 넘어섰다. 번데기가 다른 산업의 부산물이었고 메뚜기나 멕시코의 흰개미 알은 채집으로 얻어야 하지만, 애초에 식품이라는 전제 아래 엄격한 법과 규제를 정해 사육하는 곤충도 있다. 갈색거저리 유충(mealworm·고소애)이나 집귀뚜라미(house cricket)가 대표적인 예로,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나라에서 온·습도 등 환경을 통제해 사육한다. 넓어지는 저변만큼이나 조리법도 다양해지고 있어서 벌레를 날로 먹는 단계도 넘어섰다. 집귀뚜라미 가루로 구운 빵이나 햄버거 패티, 갈색거저리 유충으로 만든 단백질 바(bar)나 파스타 등이 이미 등장했다.

우리 사정은 어떨까? 세계와 궤를 같이하니 식용 곤충 시장은 성장세를 누리고 있다. 올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18년 곤충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식용 곤충 시장 규모는 430억원이었다. 2011년 1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로 폭발적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21%이므로 내년에는 508억원, 2030년에는 992억원에 이르리라 전망한다. 국내에는 흰점박이꽃무지 유충, 갈색거저리 유충, 장수풍뎅이 유충, 쌍별귀뚜라미, 메뚜기, 누에(번데기), 백강잠(말린 누에고치) 7종이 식용으로 등록되어 있다. 곤충 사육 및 가공 업체 2318곳 가운데 1305곳에서 식용인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을 키운다.

인간에게 안전한 환경에서 사육했다는 전제 아래 곤충의 영양 가치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집귀뚜라미만 해도 9가지 필수아미노산을 적정 비율로 함유한 완전 단백질의 원천으로 대두(콩)와 견줄 만하다. 메뚜기는 100g당 철분 비율이 8~20㎎으로 철분 비율이 높다는 소고기의 6㎎을 웃돈다. 전반적으로 식용 곤충은 고단백 저칼로리 식재료이며 식이섬유와 불포화지방, B12, 리보플라빈 같은 비타민도 갖췄다.

그래서 이제 모두가 곤충을 먹어야 할 시기인가. 속단하기는 이르다. 일단 육류가 영양과 무관하게 갖춘 맛이나 정서적 가치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영양과 건강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모든 음식을 그 두 가지 기준으로만 선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는 삼겹살을 귀뚜라미로 치환하면 어떨까? 영양과 건강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삼겹살의 맛과 질감, 더 나아가 불판에서 구워가며 먹는 분위기는 포기해야 한다. 배양육의 세(勢) 불리기도 간과할 수 없다. 동물의 근섬유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추출 및 배양해 만드는 원리라 앞서 살펴본 고기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품으니, 현재 140g짜리 햄버거 패티 한 장에 66만원인 가격이 1만2000원까지 내려가면 충분히 경쟁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십 년은 족히 걸린다는 점이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