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화성사건' 9건 외 추가 범행 5건 등 총 14건 자백
프로파일러 9명· 법최면가 2명 투입해 '압박'
4차 사건 증거품에서도 DNA 발견…9차 대질심문 "심경 변화"
경찰 "자백 신빙성 확인中…2일 수사사항 브리핑"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6)가 화성사건 9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1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총 10건 중 모방범죄로 판명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과 추가 5건의 범행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이춘재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한 데에는 5차, 7차, 9차 사건에 이어 4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그의 DNA가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가 지난 20일과 25일 잇따라 보도한 이춘재의 고교 시절 사진(왼쪽). 가운데는 조선일보가 새롭게 입수한 이춘재의 고교 졸업 앨범 사진. 오른쪽은 화성 사건 당시 몽타주다.

화성사건 이외 범행은 화성사건 전후 화성 일대에서 3건, 이춘재가 충북 청주로 이사한 뒤 처제를 살해하기 전에 발생한 2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 화성사건 9건·추가범죄 5건 자백…4차 증거품에서도 DNA 나와
경찰은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상대로 이날까지 9차례에 걸쳐 대면 조사를 진행했다. 추가 범행 혐의를 줄곧 부인하던 이춘재는 지난주부터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고 한다.

최근 경찰은 4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춘재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4차 사건은 1986년 12월 14일 화성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에서 피해자 이모(당시 23세)씨를 스타킹으로 결박해 성폭행 한 뒤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실을 들은 이춘재는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가 자백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며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어 "자백 내용에 대한 당시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관련자 수사 등으로 자백의 신빙성과 임의성을 확인해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경찰은 과거 수사 기록에서 이춘재가 ‘처제 성폭행 살인’ 등 유사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던 사실을 확인한 뒤, 총 10건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외에도 유사 사건을 전면 재검토해왔다.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아 자백을 받아냈던 프로파일러를 포함해 총 9명의 프로파일러들이 이춘재와 접견하며 사건을 분석했다. 또 7차 사건의 목격자인 ‘버스 안내양’ 엄모씨를 상대로 법최면 조사를 진행해 "이 사람(이춘재)이 기억 속 용의자가 맞다"는 진술을 얻어내는 등 이춘재의 혐의 입증을 압박해왔다.

◇이춘재, 33년만에 DNA에 덜미…"진술 신빙성 확보가 관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처음 발생해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경찰이 첫 피해자를 처음 발견한 장소는 1986년 10월 23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재 화성시 진안동)의 한 농수로에서였다. 박모(당시 25세·2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2개월여 뒤 인근에서 권모(당시 24세·3차)씨와 이모(당시 23세·4차)씨가 잇따라 살해됐다. 이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란 명칭이 처음 붙었고, 비극은 이후 5년 가까이 이어졌다.

1987년 1월 경찰은 1986년 9월 15일 태안읍 안녕리(현재 안녕동)에서 있었던 이모(당시 71세·1차)씨 살인사건도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뒤늦게 1차 사건으로 분류했다.

이후 살인은 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 화성시 일대 반경 3㎞내에서 이어졌다. 총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87년 1월 10일 홍모(당시 18세·5차)양 △87년 5월 2일 박모(당시 30세·6차)씨 △88년 9월 7일 안모(당시 54세·7차)씨 △90년 11월 15일 김모(당시 14세·9차)양 △91년 4월 3일 권모(당시 69세·10차)씨가 잇따라 희생됐다.

1988년 9월 16일 태안읍 진안리에서 발생한 박모(당시 13세·8차)양 살인사건은 모방범죄로 판명 났고, 1989년 피의자도 검거했다. 그러나 나머지 9개 사건의 범인은 찾지 못했다. 2007년 이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 마지막 피해자 권씨 사건의 공소시효도 2006년 4월 2일자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국내 최악의 ‘장기(長期)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한 이 사건은 지난 7월 15일 경기남부청 미제사건수사팀이 오래된 증거품에서도 범인의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재감정을 의뢰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현장도.

국과수 감정 결과,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관련된 사건 10건 가운데 5차, 7차, 9차 등 3건에서 나온 DNA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건발생 33년 만에 용의자의 덜미가 잡힌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춘재의 자백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고 인간관계를 맺는 라포르(Rapport·신뢰감으로 이뤄진 친근한 인간관계) 과정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다만 이춘재의 진술이 실제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인지, 자포자기 상태에서 단순히 경찰이 제시하는 범행을 시인한 것인지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게 경찰의 숙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