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개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수년간 자폐 장애 치료를 받아오던 한 고등학생 보호자가 최근 대학병원 진료의뢰서를 요청했다. 오는 11월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원서 접수에 필요하다고 했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이 학생은 큰 목소리로 혼잣말하는 증상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분리된 공간에서 시험을 봐야 한다. 이런 요청을 하려면 종합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학생의 상태는 그동안 장애 증상과 경과를 지켜보며 부모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의해 온 동네 의사가 가장 잘 안다. 환자를 처음 보게 될 종합병원 의사가 더 잘 판단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교육청은 굳이 종합병원 진단서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지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종합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하고 초진 진료를 보려면 대개 몇 달 기다려야 한다. 학생 어머니는 수능 원서 접수 마감을 맞추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종합병원이 발행하는 진단서를 받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도 시험을 앞둔 학생과 보호자에게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다.
요즘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에 경증 환자들이 몰리는 데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 전달 체계 개선 논의가 한창인데, 공공기관에서 종합병원 진단서만 요구하는 것은 보건 정책 방향과도 배치된다. 병역 판정 검사에 필요한 질병 진단서의 경우 기존에는 지정 병원 진단서만 인정했으나 올해부터 동일한 의사가 6개월 이상 치료한 경우 비지정 병원의 진단서도 제출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각종 질병 관련 서류에 종합병원 진단서만 요구하는 규정은 하루빨리 완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