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속(續). '잇는다'는 뜻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후속작엔 전편 제목에 이 한 글자만 딱 붙여 표시했다. 영어로 sequel, '속편(續篇)'이었다.

그런데 엄밀히 '속'은 sequel과는 좀 다른 의미였다. sequel은 어디까지나 전편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란 표시다. 그런데 한국영화 '속 미워도 다시 한 번' '속 영자의 전성시대'는 과연 후일담이었나? 전편 소재나 주제의 '변주'일 따름이다. 등장인물들부터 다른 경우가 많다. 요즘 기준으론 사실상 '리메이크'라 불렸어야 옳다. 1980년대 들어 아라비아숫자 표시로 바뀐 뒤로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애마부인' '빨간앵두' '뽕' 등 1980년대 에로영화 속편들 역시 후일담은 아니었다.

한국만 이랬던 건 아니다. 일본이나 중화권 문화예술계에서도 '속'을 이와 유사하게 썼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속'은 콘텐츠 속 등장인물들 후일담이 이어진다는 개념이 아니라, 잠재 소비자들에게 보내는 권유형 홍보 문구에 가까웠던 셈이다. 전편과 비슷한 얘기, 비슷한 분위기 콘텐츠이니 전편이 재밌었다면 이것도 '이어서' 보시라는 정도.

물론 요즘 속편들은 다르다. 대부분 등장인물들 후일담에만 아라비아숫자로 속편을 표시한다. 서구식 속편 개념이 일반화됐다. 서구 TV드라마에서 넘어온 '시즌' 표시도 잦아졌다. 정치권 등에서도 곧잘 차용해 쓴다. '이번 정권은 ○○○ 정권 시즌2'란 식으로. 예컨대 이번 문재인 정권은 출범 당시부터 '노무현 정권 시즌2'란 얘길 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시즌'이 아니라 '속' 개념을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최근 조국 장관 임명과 그를 둘러싼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같다는 점이 아니라 '비슷한 철학, 비슷한 태도'란 점에서 이번 정권 전편은 과연 노무현 정권이 맞느냐는 얘기다. '노무현 정권 시즌2'를 '속 ○○○ 정권'으로 고쳐볼 때, 저 공란 속 글자는 어쩌면 그들이 가장 날 선 공격을 펼쳤던 이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