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싶을 때 찾아야 할 것 같지만, 대학로에서 이런 인식은 깨진 지 좀 오래다.
청년들 중 가벼운 코미디 쇼를 '대학로 연극'으로 여기는 이들이 상당수다. 누구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흐름이 있다.
반대편에는 진지하게 연극의 역과 앞날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이 역시 누구를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런 이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희극'이라는 뉘앙스에 딱 어울리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립극단이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스카팽'은 희극 가뭄에서 단비 같은 존재다. 희극 장르로 연극사를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는,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의 '스카팽의 간계'가 원작이다. 몰리에르는 '동 주앙' '인간 혐오자' '수전노' 등의 작품을 통해 유머와 사회 풍자를 선보였다.
국내에서 드물게 공연한 '스카팽의 간계'는 몰리에르의 이전 작보다 날카로움이 떨어졌다는 평을 듣는다.
이탈리아 희극 양식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하인 '스카피노'에서 유래한 캐릭터 '스카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한국 관객 정서에 딱 들어맞을까, 라는 의심이 초반에 든 것도 사실이다. 희극적인 요소가 다분한 마당극도 멀게 느껴지는데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뭐?
복잡한 연극 양식, 크게 와닿지 않는 배경은 일단 잊어버리자. '스카팽'은 각색·연출을 맡은 ‘한국 신체극’의 대가 임도완의 리듬 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만화적인 상상력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각종 사운드, 거기에 걸맞게 통통 튀는 움직임, 그리고 유랑극단 같은 합주가 빚어내는 소동극 앞에 고전의 현재적 의미, 시대를 관통하는 성찰, 문학적 맥락의 유의미함은 하릴없어진다.
짓궂지만 결코 미워할 수 매력의 하인 '스카팽'과 그가 어리숙한 주변인물들을 속이는 행위는 '지배계층의 탐욕과 편견을 조롱한다'로 수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또한 너무 클리셰적 표현이다. 차라리 각자의 고충이 속고 속임을 낳고, 그런 연결고리가 삶의 지난함을 표현해준다는 해석이 이번 국립극단 버전에 더 어울릴 법하다.
한국식 막장 드라마처럼 우연이 반복되며 '제롱뜨'와 '아르강뜨' 집안이 겹사돈을 맺는 장면은 다짜고짜 해피엔딩의 카타르시스다. 먼땅의 고급문화처럼 보이는 희극은, 유쾌하게 한국식으로 연착륙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원작과 달리 작가 몰리에르가 화자로 등장한다. 임 연출과 호흡을 맞춰온 배우 성원이 몰리에르를 연기하는데, 1인 만담 같은 그의 활약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