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흰색과 검은색, 파란 호수와 암흑의 밤을 가르는 고니의 날갯짓이 아름답다.

8월 29·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김리회(32)는 서정적인 백조 '오데트'와 강렬한 유혹의 꽃 흑조 '오딜'의 1인2역을 꿈결처럼 오갔다.

뿌윰한 무대 위에서 동작들은 말 없이 짙어지고 옅어져 갔다. 섹시한 흑조 오딜로 변신해 선보인 고난도 기술 32회전 푸에테(회전)에서 칠흑 같은 밤에 엄습할 만한 불길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출산 100일 만에 발레단으로 복귀, 몸을 필사적으로 다시 만들어 오른 무대. 호수 위에서 여유로워보이지만, 호수 밑에서 늘 발을 젓고 있는 고니는 그녀 자신이었다.하지만 출산을 했다고, 워킹맘이라고, 이 무대에 굳이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무용수 자체로 빛났다.

이번 '백조의 호수'는 국립발레단이 4년 만에 올린 것이다. 러시아 발레 안무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92)가 안무했다.

악마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공주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사랑을 그린 동화 같은 이야기다.

김리회를 비롯해 고니의 날개 같은 긴팔의 우아함을 새삼 증명한 박슬기, 이번이 '백조의 호수' 주역 데뷔임에도 장신을 활용한 카리스마 있는 무대를 선보인 정은영 등 다른 주역 무용수들도 빛났다.

이들뿐 아니다. 군무진에서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진가를 확인했다.

특히 24마리의 백조들이 순차적으로 무대를 홑이불처럼 덮은 뒤, 펼쳐지는 군무는 눈부셨다. 왜 '백조의 호수'가 '백색 발레'의 대표작인지 수긍이 됐다.

정치용이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역동적이었다. 이번에 '진정한 사랑이 운명을 이긴다'는 해피엔딩을 선택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의 비상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