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치 쇼타로(왼쪽), 기타무라 시게루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외교·안보 사령탑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75)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이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순 단행될 개각에 맞춰 고령(高齡)의 야치 국장이 물러나고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62) 내각정보관이 그 후임으로 유력시된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31일 보도했다.

정통 외교관 출신의 야치는 일본에서 '아베의 외교 책사(策士)'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베 총리는 2014년 NSS를 신설하면서 그를 초대 NSS 국장으로 앉혔다. 야치는 지난 5년간 외무성·방위성·경찰의 주요 정보를 취합·분석해 유기적인 대응을 하는 기관으로 NSS의 위상을 만들어왔다. 지난 5년간 일본의 주요 외교 현안은 모두 야치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야치는 196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조약국장, 총합외교정책국장을 역임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의 총리가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1차)-후쿠다 야스오 총리로 교체됐지만 그는 외무 차관직을 계속 유지했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중·일 관계가 악화된 후, 2006년 아베 총리의 방중을 실현시켜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야치는 한국과 인연이 많다. 2006년 4월 일본의 독도 인근 수로 측량 계획으로 한·일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1차관의 협상 파트너가 그였다. 유명환-야치 라인은 '일본의 수로 측량 중지와 한국의 동해 해저 지명 등재 연기'로 사태를 봉합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도 그가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비밀 협상을 통해 만들어냈다.

그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자 한국 관련 사안에 대해 강경파로 돌아섰다. 아베 내각과 자민당에서 일부 인사들이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한 책임을 야치에게로 돌려 그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관측도 나왔다.

야치의 후임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기타무라는 미 중앙정보국(CIA) 같은 역할을 하는 일본 내각조사실 실장을 겸하며 '아베 총리의 분신(分身)'으로 불린다. 엘리트 경찰 출신인 그는 2017년 일본 신문에 매일 보도되는 '수상(首相) 동정'에 등장하는 횟수가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아베 총리를 자주 만나고 있다. 전국에서 수집된 국내 정보를 바탕으로 아베 총리에게 필요한 '정치 정보'를 매일같이 직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아베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배경에는 그가 지휘하는 내각조사실이 전국 289개 소선거구의 동향을 정확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아베 총리와 기타무라를 처음 연결한 고리는 북한 문제였다. 2004년 그가 경찰청 외사과장 당시 북·일 간 납치 문제 협의에 참가하면서 아베 총리를 알게 됐다. 아베는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그를 비서관으로 기용했다. 기타무라는 민주당 정권에서 현직에 임명됐는데, 2012년 12월 2차 집권한 아베 총리가 그를 유임시킬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기타무라는 지난해 최소한 3차례 이상 북한의 김성혜 통일전선전략실장을 만나 북·일 관계 정상화를 타진해왔다. 아베 총리가 올 초부터 "나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 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배경에는 기타무라가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북·일 비밀 협상에 나선 그를 아베가 NSS 국장으로 기용하는 배경에는 북한 문제에 대해 진전을 바라는 아베 총리의 구상이 반영됐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