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위스 알프스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의 남티롤 돌로미테 지역에 위치한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로 향했다. 세 봉우리가 우뚝 솟은 트레치메는 작은 봉우리란 뜻의 치마 피콜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치마 그란데, 동쪽 봉우리란 뜻의 치마 오베스트가 나란히 붙어있다.
트레치메행 첫차를 타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돌로미테 풍경을 보았다. 어느새 피곤함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세 개의 암봉은 보이지 않았지만, 거대한 병풍 암벽의 웅잠함에 잠시 위축됐다. 하얀 안개가 빠르게 암벽을 덮기 시작했다. 어느새 세상은 화이트아웃이 되었고, 길 위에 홀로 선 작은 교회마저 운치 있어 보였다.
병풍 같았던 암벽은 거대한 돌기둥으로 변하더니, 반대편에 이르러서야 그 병풍 암벽이 트레치메의 뒷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웅장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독특한 모양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걸까? 트레치메는 내가 아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자연건축물이었다.
트레치메를 돌아 알암산장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서 1년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암봉을 오랫동안 마주하고 싶었다. 계절마다 푸른 초원과 야생화가 필 것이고,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볼 것이고, 밤이되면 세 개의 암봉 끝에 걸쳐질 은하수를 상상하니 대상도 없이 무한정 질투가 났다. 막연히 내가 누리지 못할 아쉬움이 질투를 유발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