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 원장이 환자의 발을 검사하고 있다.

하이힐을 즐겨 신는 여성들이 많다. 하이힐을 신으면 다리 선이 매끈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하이힐을 오래 신으면 무지외반증이 생길 수 있다.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기울어져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심하면 수술을 해야 한다. 문제는 수술을 받을 경우 다 나을 때까지 오랫동안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술을 한다고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다. 수술 여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수술이 무서워 단편적인 처방에 기대는 사람도 많다. 아플 때마다 스테로이드 주사 등을 주입해 통증을 달래는 것이다. 이는 관절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만 하이힐로 고통받는 건 아니다. 아부다비와 쿠웨이트에서 현지 안강병원을 찾은 여성 환자 중에도 발가락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중동의 한 50대 여성은 발가락 통증이 심해 우리 병원을 찾았다. 그는 걸을 때마다 전해지는 발가락 통증으로 하이힐을 못 신는 것은 물론, 가까운 거리를 외출하는 것도 버거워했다. 진단 결과 무지외반증, 관절염, 터프토(긴장발가락)를 앓고 있었다. 바로 여성들의 엄지발가락 통증을 일으키는 3대 원인이다. 엄지발가락이 휘면서 생기는 무지외반증, 관절 연골이 닳아 통증을 유발하는 퇴행성 관절염, 엄지발가락 주변 인대와 힘줄이 변형되며 생기는 터프토까지 모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무지외반증은 중년 이상 여성에게 특히 잘 발생한다. 무지외반증이 있으면 나이가 들어 무릎 관절염이나 고관절의 관절염 빈도가 증가하거나 악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지외반증이 있는 경우 관절이 붓는다. 심하면 발가락이 서로 겹쳐 신발을 신기가 어렵고, 두 번째에서 세 번째 발가락이 같이 구부러져 '해머 발가락' 이라 부르는 형태로 바뀌기도 한다.

안강 안강병원장.

인간의 엄지발가락은 발바닥이 받는 하중을 견뎌내기 위해 복잡한 구조로 이뤄졌다. 인대, 힘줄, 엄지발가락 아래의 아주 작은 2개의 뼈(종자골)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작은 종자골 2개는 엄지발가락 아래에서 엄지발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구조다. 엄지발가락 바닥 쪽의 힘줄과 인대는 종자골이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 협력한다. 100m 달리기 준비 자세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출발 소리를 듣고 뛰어나가려는 순간, 엄지발가락에 가장 강력한 힘이 가해진다. 이 힘을 이용해 빠르게 출발할 수 있다. 이때 보이지 않는 엄지발가락 아래의 종자골들이 베어링 역할을 하고 다른 힘줄과 인대들이 이를 지지하도록 돕는다. 이처럼 복잡한 구조에 손상이 생기거나 다친 상태를 오래 내버려두면 긴장 발가락이 된다.

긴장발가락은 걸으면 통증을 심하게 느끼고, 많이 걸으면 붓는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엄지발가락 주위가 긴장되며 움직임이 제한된다. 무지외반증은 주로 발가락 바깥쪽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긴장발가락은 발가락 바닥 쪽이 붓거나 아프고 엄지발가락을 굽히는 자세를 할 때 통증이 심하다.

주의할 점은 무지외반증이나 긴장발가락도 오래되면 발가락 관절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지외반증과 관절염, 긴장발가락은 한 번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경우 발 전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발가락 주위가 단단해져서 발을 디딜 때마다 아프며 눈에 띌 정도로 붓기도 한다. 심지어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서로 닿아 '뚜둑' 하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발가락 관절이 부은 부위에 열이 나고 최악의 상황에는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발가락이나 발의 문제는 더 나아가 무릎 통증이나 관절염을 유발할 수 있다.

발가락에서 통증이 전해진다고 무조건 수술을 하는 건 좋지 않다. 수술을 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문제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미용을 위한 수술이라면 더욱 고심해야 한다. 엄지발가락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는 관절이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수술로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50대 여성에게는 "아직 수술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이야기했다. 수술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또 한 번 정밀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아킬레스 힘줄 근처와 정강이 뒷근육이 긴장된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도 엄지발가락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통증이 느껴지는 발이 아닌 정강이 등에 치료를 진행했다. 통증은 환자가 만족할 만큼 개선됐다.

만성통증의 경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통증 원인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