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는 빨갛고, 동그라미는 파랗고, 세모는 노랗다."
독일의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가 창립 4년째를 맞은 1922년 페터 켈러라는 학생이 디자인한 아기 요람〈큰 사진〉의 특징을 훗날 제2대 교장이 된 한스 마이어는 이렇게 짚었다. 켈러의 요람은 삼각형·사각형·원이라는 기하학적 형태가 스승인 추상화가 칸딘스키로부터 영향받은 삼원색과 군더더기 없이 결합돼 있다. 이듬해 바우하우스 첫 전시를 앞두고 출품작 과제로 디자인한 이 요람은 수요가 없어 빛을 보지 못하다가 독일 가구회사 텍타(Tecta)의 요청을 받은 켈러가 드로잉을 제공하면서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내년 2월 2일까지 계속되는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에서도 켈러의 요람은 돋보인다. 형태와 색채를 장식이 아니라 작품 자체로 간주했던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압축해 보여준다. 뒤집히지 않도록 하부에 무게추를 두고 측면엔 통풍창까지 마련한 이 요람은 바우하우스가 초기 표현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 실용주의·기능주의를 본격 지향하게 된 기점으로도 꼽힌다.
바우하우스 창립(1919)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는 켈러 등 학생들은 물론 발터 그로피우스,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마르셀 브로이어 같은 바우하우스 거장들의 오리지널 디자인 60여점을 선보인다. 유명한 '바르셀로나 체어' 같은 의자부터 탁자, 다기(茶器), 조명, 유리 공예품까지 아우른다.
김희원 큐레이터는 "바우하우스의 작품은 지금으로선 특별해 보이지 않고, 이케아에 가면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이지만 당시엔 혁신이었다"고 설명했다. 바우하우스는 간결한 형태, 강철·유리처럼 대량 생산 가능한 소재로 현대인의 삶을 바꾸고자 한 움직임이었다. 가장 혁신적이었던 디자인이 지금 가장 친숙한 디자인으로 다가온다. 바우하우스는 나치의 발호로 1933년 문을 닫았지만 그 유산은 현재 진행형임을 실감하게 된다.
올해는 금호미술관 설립 30주년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지하 전시장에는 미술관의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도 함께 마련됐다. 어린이 가구 컬렉션〈작은 사진〉은 아르네 야콥센, 알바 알토 등 현대의 스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어린이용 의자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주거를 주제로 한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현대적 주방 기구들과 함께 '바이센호프 주택단지'의 건축 도면들을 볼 수 있다. 1920년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그로피우스 등이 참여했던 프로젝트다. 디자인이 조금씩, 그러나 꾸준하게 현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왔음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