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역 보복에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미·중 간 충돌에서 촉발된 세계 경제 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만 쳐다보고 있다가 이 소용돌이에서 자칫 결정타를 맞을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무역에서 시작된 미·중 충돌은 화웨이를 둘러싼 기술 선점 싸움으로 비화한 데 이어 급기야 환율 전쟁으로 번졌다. 미국이 25년 만에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자 중국은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를 정면 거부하고 환율을 달러당 7위안 위로 올리는 '포치(破七)' 정책으로 역공에 나섰다. 미국 학계와 언론은 '분쟁(battle)' 대신 '전쟁(war)'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두 나라가 포문을 열자 다른 나라들도 속속 금리를 인하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 경제 전쟁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당시는 G20을 주축으로 각국이 협력하며 공생을 모색했지만 지금은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존 게임이다. 무역 분쟁과 제조업 경쟁을 넘어 첨단 ICT(정보통신기술)·인공지능·빅데이터·바이오헬스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치열한 각축전이기도 하다. 밖에선 태풍이 몰아치는데 나라 안에선 산업과 기업 경쟁력을 망가뜨리는 역주행 정책이 그치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OECD 32개국 중 꼴찌로 추락했다. 외환 위기 같은 돌발 사태가 없는데도 지금처럼 수출·투자·고용 등 주요 지표가 모조리 최악에 허덕이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한국은 국민 총소득에서 수출입이 87%를 차지할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높고, 그중에서도 미·중과의 교역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미·중 전쟁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볼 나라로 한국과 멕시코를 꼽았다. 벌써부터 증시와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이탈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처한 리스크를 피하려 해외로 떠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은 한두 해 사이에 끝날 일도 아니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은 대형 악재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숱한 경쟁과 위험을 뚫고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로 성장시켜온 경험과 실력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에 기업만큼 전쟁에서 살아나는 법, 이기는 법을 잘 아는 경제 주체는 없다. 아마추어 정부가 끼어들지 말고 기업을 방해하지만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