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21세기 터키에서 재현되고 있다. 2016년 실패로 돌아갔던 반(反)정부 쿠데타 이후 터키에서 지금까지 최소 30만권의 책이 폐기됐다. 당국의 공식 발표만 해도 30만권이 넘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백만권에 달한다. 수많은 언론사와 출판사도 폐쇄됐다.
지야 셀추크 터키 교육부 장관은 터키가 2016년 7월의 쿠데타 시도 이후 터키 전역의 학교와 도서관에서 30만1878권의 소설책·역사책·교과서 등을 반출해 폐기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책들이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터키의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터키 정부는 쿠데타의 배후가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반대하는 귈렌과 그 추종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귈렌은 1999년 미국에 망명해 펜실베이니아주에 살고 있다. 지야 장관은 쿠데타 이후 귈렌과 관련된 2284개의 교육기관도 폐쇄했다고 덧붙였다.
터키 정부가 귈렌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단속한 책들의 사례를 보면 황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터키의 대안 언론 매체 터키 퍼지에 따르면 2016년 한 수학 교과서도 금서로 지정됐는데, 한 문제에 'F 지점부터 G 지점까지'라는 구절이 있다는 이유였다. 영어 알파벳 F와 G가 펫훌라흐 귈렌의 이니셜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터키 일간 비르귄은 같은 해 12월 귈렌의 미국 내 거주지 '펜실베이니아'라는 지명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180만권의 교과서가 폐기됐다고 보도했다.
지식인들과 언론에 대한 탄압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국제 단체 펜(PEN)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쿠데타 시도와 비상사태 선포 이후 170여개의 언론·출판사가 폐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