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도굴한 중국 도자기들을 자기 집 안방 장롱 속에 36년간 감춰온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우리나라 수중고고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보물선인 신안선에 실렸던 고급 유물들이다.
문화재청과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3일 "신안군 증도 앞바다 신안해저유물매장해역(사적 제274호)에서 도굴한 중국 도자기 57점을 숨겨온 A씨를 검거했다"며 회수한 유물을 공개했다. 중국 저장성 용천요(龍泉窯)에서 만든 청자 46점, 푸젠성에서 생산한 백자 5점, 장시성 경덕진요(景德鎭窯) 가마에서 제작한 백자 3점, 검은 유약을 바른 흑유자(黑釉瓷) 3점이다.
대부분 가마에서 막 꺼낸 것처럼 보존 상태가 좋고, 청자 구름·용 무늬 큰 접시, 청자 모란 무늬 병 등은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가치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특히 높이 7.5㎝의 흑유잔은 중국 송대 푸젠성 건요 가마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표면에 토끼털 모양 무늬가 있어 '토호잔'으로도 불리는 수작이다. 심지연 문화재감정위원은 "건요 가마에서 제작한 흑유잔은 북송시대 황실에서 애용한 명품 찻잔으로, 일본 수출품으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했다.
1983년부터 유물을 집에 숨겨둔 A씨는 최근 팔 곳을 찾아다니다 경찰에 검거됐다. 한상진 사범단속반장은 "잠수부를 고용해 몰래 끄집어 올린 뒤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며, 귀한 도자기는 오동나무 보관함에 넣고 나머지는 비닐에 싸서 장롱 속에 보관해 오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해외에 팔려고 계획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A씨는 작년 8월 도자기 서너 점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판매하려다 가격이 맞지 않아 도로 들고 왔다고 한다. 한 반장은 "도굴은 공소시효가 10년이라 처벌할 수 없지만 은닉은 공소시효가 없어 '은닉죄'로 검거했다"고 했다.
14세기 원나라 거대 무역선인 신안선은 1323년 중국 경원(慶元·현재의 닝보)에서 출항해 일본 하카타(博多)로 항해하다가 신안 앞바다에 침몰했다. 1975년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리면서 처음 실체가 드러났다. 총 11차례 수중 발굴 조사 결과, 도자기 2만여점, 석재료 40여점, 금속류 720여점, 동전 28t 등의 막대한 유물을 건져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