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스님 에세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수오서재)은 최근 100쇄 기념 특별판을 제작했다. 보라색 밤 풍경이던 원래 표지 그림을 푸른빛 도는 아침 풍경으로 바꿔 청명한 여름 느낌을 냈다. 황은희 수오서재 대표는 "계절 옷을 갈아 입힌다는 느낌으로 작업했다"고 했다. 표지 하나 바꿨는데 효과는 확실했다. 출간 직후엔 종합 베스트셀러 1~2위였던 이 책은 판매가 주춤하던 참이었는데, 5월 셋째 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다시 올랐다.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12가지 인생의 법칙'(메이븐)은 20만부 특별판을 5000부 한정 양장판으로 만들었다. 20~30대 남성이 주로 보는 책이었지만 한정판이 나오자 20~30대 여성의 소장욕을 자극해 독자가 확장됐다. 강수진 메이븐 대표는 "양장판 제작 추가 비용이 권당 1500원 정도 더 들지만 종합 40위권에서 맴돌던 책이 20위권으로 뛰어오르는 등 비용 대비 효과가 톡톡히 난다"고 했다.

베스트셀러를 표지만 바꿔 다시 선보이는 '에디션 마케팅'에 출판계가 공들이고 있다. 익숙한 책을 옷 갈아입혀 독자들에게 다시 상기시키는 '낯설게 하기' 전략.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이미 책을 가지고 있던 독자들이 표지별로 소장하려 재구매하기도 하고, 유명한 책인 걸 알고 있었지만 미처 사지 못했던 독자들이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나와 25만부 팔린 하완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웅진지식하우스)는 에디션 마케팅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직접 계절별 표지를 따로 만들었는데 여름 에디션 2000부, 겨울 에디션 6만부, 봄철 특별판인 벚꽃 에디션 5만부가 모두 다 팔렸다. 신동해 웅진지식하우스 주간은 "벚꽃 에디션의 경우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특히 많이 팔렸다. 평소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도 선물용으로 많이 사더라"고 했다. 75만부 팔린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RHK)도 겨울 에디션 7만부, 봄꽃 에디션 3만부가 완판됐다.

서점별 에디션도 유행이다. 4월 출간된 김영하 에세이 '여행의 이유'(문학동네)는 5000부 한정으로 '동네 서점 에디션'을 따로 만들었다. 박영신 문학동네 편집부장은 "사은품 같은 구매 혜택이 있는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서점과는 달리 동네 서점은 이벤트하기가 힘들어 표지를 따로 제작했는데 배포하자마자 매진됐다"고 했다. 정재승 강연집 '열두 발자국'(어크로스)은 25만부 기념 양장 사인본 3000부를 예스24에서만 단독으로 판매한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서점들이 자기들만의 특별한 책을 원한다"고 했다.

불황 타개를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베스트셀러 독식 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한 출판인은 "기존 베스트셀러가 표지만 바꿔 가며 계속 순위권을 유지하면서 '베스트셀러 장기전'이 심화되고 있다. 신간이 주목받을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