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정·'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저자

목욕이 가장 효과를 발휘할 때는 언제일까. 다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마음에 때가 쌓였을 때'다. 매일 샤워에 주말 목욕까지 다니면서도 퇴근 후 목욕 가방을 들고 나서는 날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기력하게 있느니, 뜨끈한 탕에 담그는 게 차라리 낫지 싶어 선택한 처방이다.

먼저 샤워를 하며 워밍업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물을 따라 생각이 흘러나온다. 외면하고 싶은 기억들이 툭툭 떠오른다.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의 힘을 빌려 깊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정신의 외피에 들러붙은 부정적인 기운이 떨어져 나가는 단계다.

나쁜 감정을 한 꺼풀 씻어내고 나면 탕에 입수한다. 이제부터는 휴식과 명상의 시간이다.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기운에 사지가 풀리고 눈이 스르르 감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면 자연스레 잡념이 사라진다. 때론 고민의 해답이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무심코 떠오르기도 한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왜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는지 실감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언제 쌓였는지 모를 각질을 벗겨내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손끝에 힘을 실어 피부를 매만지면 어쩐지 모든 일에 겸허해진다. 내 몸 하나 깨끗이 하기도 힘든데, 누구를 탓하랴. 켜켜이 쌓인 묵은 걱정거리도 함께 씻어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깊이 잠든다. 언제 우울했냐는 듯이.

몸을 돌보는 일은 곧 정신을 살피는 일과도 같다. 몸을 씻으러 갔다가 치유를 경험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니 목욕에 이런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마음을 씻는 일', 세심(洗心)이라고. 찌뿌둥한 마음 근육이 개운하게 풀리니 이보다 적당한 이름이 있을까. 근심으로 어깨가 무겁다면 목욕을 해보자. 걱정은 수용성이라는 걸, 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알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