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이 지난달 11일 미국 공유 오피스 업체인 위워크(Wework) 여의도점 6인실을 계약했다. 일단 두 달 동안 비상근 임원직을 제외한 여연 근무자(48명) 전원이 한주에 6명씩 이 곳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여연의 위워크 근무는 김세연(3선·부산 금정) 여연원장이 취임하면서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위워크 여의도에서 팀 회의를 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여연은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여당인 민주자유당 싱크탱크로 출범했다. 국내 첫 정당 산하 연구소였다. 출범 당시 박사급 연구위원 13명을 채용하는데 220명이 몰려 1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후 여연은 깊이 있는 정책보고서와 정확한 여론조사로 "여연은 정권 창출의 시나리오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지지율이 박빙이라 대부분 여론조사 업체에서 혼선을 빚었던 2012년 대선 때도 여연 조사가 가장 정확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명성이 추락했다. 특히 2017년 대선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신뢰도가 급락했다. 지난 2월 황교안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당내에서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여연 기능 정상화가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연은 초대 이영희 전 노동부장관을 비롯해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박세일 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 정치적 색채보단 정책적으로 명망있는 인사들이 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계파 나눠먹기 차원에서 원장을 차지하면서 전문성보다는 정치 계파의 싸움터로 전락한 것도 여연 몰락의 원인으로 꼽혔다. 시대 흐름을 쫓아가야 하는 정당 연구소의 연구 초점이 정치적 계파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동원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멀어졌다. '올드(old)'해졌다는 것이다.

여연에 정통한 한국당의 관계자는 "김 원장은 취임 첫 과제로 여연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조직으로 포맷팅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여연 내부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나'는 정도로 침체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며 "위워크 입주도 여연 구성원의 역량과 자신감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여연이 입주한 위워크 사무실은 여의도 공원을 기준으로 동쪽(동여의도)에 있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가 '정치'의 본고장이라면, 동여의도는 증권사 등이 몰려있는 금융가다. 위워크 여의도점이 있는 빌딩은 금융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다. 여연이 계약한 20층 사무실 창 밖으로는 하나금융투자와 전국경제인연합 빌딩이 보인다.

한국당 관계자는 "정치의 장소를 바꿔서 마인드를 좀 새롭게 해 보자는 취지도 있다"고 했다. 동여의도는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진보 성향의 고소득 고학력 젊은 직장인이 포진해 있다. 이 관계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국당이라고 하면 '일단 싫다'고 한다"며 "한국당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젊은 층의 정서적 반대 심리를 어떻게 되돌리느냐이다"라고 했다.

현실적인 비용 절감의 문제도 있었다. 김 원장은 취임 이후 여연 조직 문화를 새롭게 정비하려고 인테리어를 바꿀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영등포 당사의 여연 사무실 공간을 바꾸려면 수 천만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 위워크 6인실의 임대료는 월 382만원이다. 위워크에 가게 되면 덤으로 조직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도 있게 된다.

여연은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yeouido_institute_)을 새로이 열었다.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실시간SNS로 공유하는 앱(응용프로그램)이다. 페이스북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40~50대 중심이라면 인스타그램은 사진찍기 좋아하는 20~30대가 주로 활용하는 공간이다.

여연의 현재 인스타 팔로워는 93명. 2923명밖에 안 되는 한국당 팔로워의 30분의 1 수준이다. 여연의 인스타 게시물은 당의 주요 정책과 정강을 소개하는 더불어민주당이나 한국당 계정과 달리 '젊은' 분위기를 내는 사진들이 많이 올라있다. 가장 최근에 올려놓은 게시물은 20~30대로 보이는 여성 직원들이 팀 회의를 하는 모습이다. 그 다음은 '쉽고 명확하고 위트있게'라는 문구가 적힌 사무실 창문 사진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정치에서는 소통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며 "형식에서도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먼저 다가서는 것"이라고 했다. 이론적으로 정당은 옳은 정책을 펴고, 그에 유권자의 동의를 받고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이를 통해 정당의 지지층을 끌어들이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는 "(한국당 내에선) 사회가 얼마나 빨리 바뀌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하지만 여연이 먼저 바뀐 세상을 알고 있다는 것을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여연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새로운 시도도 중요하지만 여연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선 연구소를 당권파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뒷받침하는 '어용' 연구소에서 탈피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