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인도 총선이 네 번째 투표를 진행하며 절반을 넘었다. 투표는 4월 11일 시작해 5월 19일까지 6주 동안 7개 날짜의 투표일을 정해 진행된다. 543개 하원 의석을 지역별로 나누어 이 7개 날짜 중 중앙선거관리위가 지정한 날짜에 투표한다. 인도 총선은 유권자 수 9억명, 총선 참가 정당 2294개, 출마 후보 8000여명, 투표소 수 100만개, 투·개표 인력이 1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세계 선거 사상 거의 전 분야에서 기록을 세우며 진행된다. 투표는 6주간에 걸쳐 진행되지만 다음 달 23일 실시하는 개표는 불과 몇 시간이면 끝난다. 올해 총선부터 100% 전자투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선거를 가능케 한 것에는 '하이테크 선거'를 위한 인도의 오랜 분투가 있었다.

전자투표 신뢰 확보 위해 해킹 대회도

인도는 1980년대부터 전자투표기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워낙 유권자가 많아 수작업으로 할 경우 개표에만 일주일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국영 전자기기 제조업체와 인도 최고 명문 인도공과대(IIT)가 전자투표기와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도 쓸 수 있도록 건전지로 작동한다. 수십년간 일부 주(州) 단위 선거, 보궐선거에서 시험하며 개량한 끝에 올해 처음으로 전국 단위로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전자투표기엔 후보자의 번호와 이름, 정당 심벌이 나열돼 있다. 그중 지지하는 후보자 옆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버튼을 한 번 누르면 확인등이 들어오고 다시 다른 버튼을 누를 수 없다.

나렌드라 모디(가운데 주황색 옷) 인도 총리가 지난 25일(현지 시각) 인도 갠지스 강변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에서 유세 차량을 타고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유권자가 9억명인 세계 최대 민주주의 선거인 인도 총선 투표는 4월 11일부터 5월 19일까지 6주 동안 7개 날짜의 투표일을 정해 투표가 진행되고, 다음 달 23일 개표한다. 투표는 6주나 걸리지만 개표는 전자투표 도입 덕분에 몇 시간이면 끝난다.

투표 결과는 중앙 서버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전자투표기 안에 저장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해킹에 대비한 것이다. 최대 3840표를 저장할 수 있는 전자투표기는 4중 밀봉 절차를 거쳐 개표날까지 보관된다. 전자투표기는 23일 개표일 각 정당 참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봉인이 뜯긴다. 이후 투표기와 연결된 제어기의 '결과' 버튼을 누르면 후보별로 몇 표를 받았는지 나온다. 이를 사람이 직접 컴퓨터에 옮겨 집계한다. 그나마 개표에 몇 시간이 걸리는 이유다.

관건은 신뢰성이다. 해킹이나 오작동이 일어난다면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3월 야당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투표기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인도 선관위는 전자투표기 해킹대회인 '해커톤'을 제안했다. 누구든지 전자투표기 해킹을 시도하도록 한 뒤, 결국 해킹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공정성을 입증한 것이다. 전자투표는 그동안 세 번의 연방 총선과 113번의 주 단위 선거에서 시행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정당이 해킹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누구도 이를 실제로 증명하지는 못했다.

투표 인증용 특수 잉크도

'투표 인증용 잉크'도 인도 투표 방식의 독특한 요소다. 인도는 인구 등록이 제대로 안 돼 총선 때마다 신원 도용과 중복투표 문제에 시달렸다. 골머리를 앓던 인도 정부는 국립 물리학연구소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 배합법을 의뢰했다. 이 비법은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에 있는 '마이소르 페인트&바나시'라는 작은 국영 잉크업체 단 2명의 기술자에게만 전수됐다. 이후 선거 때마다 투표자의 검지 손톱에 이 특수 잉크를 세로로 바르는 것으로 투표 인증을 한다. 특수 약품으로 만들어진 이 잉크는 손톱을 뽑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이 잉크 회사는 이번 선거를 맞아 10mL 잉크병 260만개를 만들었다.

인도 총선에서 사용 중인 전자투표기의 모습. 각 줄에 후보자의 이름과 정당명, 그리고 정당을 나타내는 심벌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가 완료된다. 맨 밑에는 무효표를 의미하는 ‘NOTA’ 버튼도 있다.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9억명 유권자 참여를 위한 인간의 분투도 상상 이상이다. '투표소는 거주지로부터 2㎞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인도 선거관리 규정 때문에 선관위 직원들은 북부 히말라야 고산지대와 사막, 밀림지역을 가리지 않고 투표기를 지고 가야 한다. AP통신에 따르면 선관위 직원들은 히말라야 중턱 해발 4237m에 위치한 라다크 선거구에 투표소를 차리기 위해 산소통을 메고 산을 올라야 했다. 이곳의 유권자는 단 12명이다. 또 선관위 직원들은 코끼리 떼가 우글대는 밀림과 지뢰가 깔린 공산주의자 반군 점령지도 걸어서 통과했다. 모니카 프리야다르시니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선관위 직원은 "(투표소를 설치하기 위해) 현지 부족이 노 젓는 보트를 네 번 갈아타고 24시간을 이동했다"며 "물속으로 악어와 물뱀들이 보이더라"고 AP통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