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던 호텔에서 불이 나 살려고 뛰어내렸다. 척추와 두 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오지에서 화재 사고로 다쳐 헬리콥터로 옮겨진 후 급히 수술대에 놓였다. 그러고는 비행기에 누운 채 실려서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신마비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 입원해 누워서 대소변을 해결해야 했다. 치욕스러웠다. 살았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삶이 모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손가락이라도 제대로 움직이는지 보고 싶었다. 펜과 종이를 구해서 몇 장도 아닌, 몇 줄, 몇 단어를 적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병실에서 깨어났을 때, 다리 부러진 환자들이 "유, 오케이(You, OK). 마비가 아닙니다. 러키 가이(Lucky guy)!"라며 손뼉을 쳤다. 요양 병원 어느 마비 환자의 보호자는 "우리야 하루가 지나 내일이 되어도 똑같은 오늘. 하지만 광현씨는 건강하게 우뚝 설 훗날을 위해 아픈 오늘 하루를 이기는 거야"라며 절망의 땅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참담한 고통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희망을 마주하고 회복해나갈 수 있으리란 긍정적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절망의 시간에 맞서 건강한 웃음을 되찾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담아 나보다 더 아픈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긴 인생, 이 정도 시련쯤이야'(서울문화사)는 그 결과물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큰 사고였지만,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나를 일으켜 세웠던 말 "긴 인생, 이 정도 시련쯤이야!" 절망과 시련 속에 있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