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전통과 권위가 있는 상을 받을 행운이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상금 때문이라도 이 상을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배역을 맡았다 퇴장하니 연극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존재. 연극은 계속될 것입니다. 선배들이 물려준 바통 이어받아 제 트랙을 잘 뛰고 후배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이해랑 선생님, 감사합니다!"
8일 서울 조선일보사 미술관에서 열린 제29회 이해랑연극상 시상식에서 올해 수상자인 연출가 겸 극작가 고선웅(51)씨의 수상 소감에 장내 웃음이 터졌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그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칼로 막베스' '푸르른 날에' 등 여러 연출작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았다. 창극, 뮤지컬, 오페라도 넘나들며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아리랑' 등 히트작을 냈다. 20회 수상자인 배우 김성녀는 축사에서 "'아리랑'에 출연했을 때 보니, 배우들이 연기할 땐 못 울게 하면서 자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더라. 그만큼 애정을 쏟는 덕에 배우들도 그를 믿고 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해랑연극재단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한국 연극사의 거목 이해랑(李海浪·1916~1989) 선생의 리얼리즘 연극 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 연극상이다.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은 고선웅씨에게 트로피를, 이해랑연극상 전통에 따라 상금 5000만원을 고씨의 아내 이혜원(배우)씨에게 수여했다. 트로피는 이해랑 선생의 삼남인 이석주 숙명여대 교수가 디자인한 것이다.
특별상은 강원도 속초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해온 장규호(70)씨가 받았다. 10년간 한국연극협회 속초지부장으로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비롯, 연출상·남우주연상 등을 휩쓸며 강원 연극을 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는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는지 자신이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관객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1989년 4월 8일 향년 73세로 타계한 이해랑 선생의 서른 번째 기일이기도 했다. 시상식은 이해랑 선생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했고, 축하 공연으로 국립창극단 소리꾼 이소연씨가 '사철가'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시상식에는 제1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극단 실험극장 이한승 대표를 비롯해 배우 박정자·손숙·윤석화·전성환·전무송·손봉숙·길해연·이순재씨, 연출가 한태숙·이성열·김광보·김창일씨, 프로듀서 박명성씨, 무대미술가 박동우씨와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 아시테지 한국본부 방지영 이사장 등 역대 수상자가 참석했다. 심사위원으로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와 연극평론가 김윤철씨, 연극계에서 이창기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연극평론가 임선옥씨, 이해랑 선생 가족으로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이석주씨, 조선일보사 홍준호 발행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