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모던 걸'이 상륙했다.
지난 3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 낡은 한옥들 사이 비좁은 골목에 인파가 가득하다. 트렌치코트, 청재킷을 걸친 사람들 가운데 빨간색 융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보인다. 이른바 '경성 패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영화 '아가씨'에도 등장한 1930년대 복식이다. 마침 회색 체크 슈트에 베레를 살짝 비껴 쓴 남성, 꼭 끼는 진분홍 드레스에 망사 달린 클로시(1930년대 유행한 종 모양 여성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 카페에서는 새하얀 하이넥 롱원피스에 망사장갑, 코르사주로 멋을 부린 여성들이 유유자적 차를 홀짝인다. 지금 종로는 경성 패션 전성시대다.
한때 이곳의 지배 복식은 한복이었다. 인증 샷을 남기던 관광객의 천국. 2016년 익선동 골목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개량한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고궁 나들이 필수 복장이자 삼청동 데이트 공식 드레스 코드. 하지만 익선동의 한 카페 주인은 "이제 이곳에 한복을 입고 방문하는 인파는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대신 새로운 유행이 등장했다. 돈화문 국악거리부터 종로3가역 4번 출구에 이르는 '범익선동' 일대엔 '경성 패션' 전문 대여점만 네 곳이 성업 중이다. 경성의복, 익선의상실, 종로부띠끄 등 상호부터 개화기 양장점 콘셉트를 내세웠다. 한 대여점 관계자는 "하루에만 200명 가까이 들르는 등 본격적인 '트렌드'가 시작된 건 올해 초"라고 했다.
대학생 홍민경(22)씨는 "100년 된 근대 골목을 배경으로 '그때 그 시절' 감성을 체험하려고 왔다"며 "경성 패션은 장식이 많고 색감이 화려해 체형을 보정해주고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고 극찬했다. 대구에서 놀러 왔다는 김현아(24)씨는 "적산 가옥이 남아 있는 대구나 군산에도 '모던 걸' 콘셉트의 사진관이나 개화기 인테리어의 식당이 유행하고 있다"며 "근대 가옥이 밀집한 거리를 중심으로 레트로(복고) 열풍이 부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