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치킨, 카레, 김밥, 튀김 등 수많은 먹거리가 교문을 나서는 허기진 학생들을 유혹하지만 스쿨푸드(school food)의 지존은 여전히 떡볶이다. 떡볶이만큼 맛있으면서도 푸짐하고 간편하고 빠르면서 가격도 저렴하다는 미덕을 두루 갖춘 간식은 찾기 힘들다. 그동안 떡볶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시대에 적응해왔다. 떡볶이 진화(進化)의 역사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된다.
'떡볶이 1.0'은 궁중에서 먹던 고급 요리 버전이다. 원래 떡볶이는 굵은 가래떡을 길게 4등분해 소고기, 버섯, 갖은 채소와 함께 간장으로 양념해 볶은 음식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밥 지어 먹을 쌀도 귀했다. 그런 쌀로 만든 가래떡에 소고기, 버섯 등 각종 값비싼 부재료가 들어갔으니 궁중이나 돈 많은 양반가에서 그것도 명절에나 별식으로 맛보는 최고급 요리였다. 간식으로 먹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귀하고 비싼 떡볶이가 거리에 나선 건 6·25 이후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간장 양념에 가래떡을 볶았다. 어느 때부턴가 간장 외에 고춧가루도 넣기 시작한다. 요즘 통인시장에서 파는 기름떡볶이가 이 무렵 등장했다고 추정된다. '떡볶이 2.0'이다.
'떡볶이 3.0'은 고추장과 설탕 따위를 섞은 매콤달콤하고 걸쭉한 국물에 끓이는 떡볶이다. 요즘 사람들이 '떡볶이' 하면 떠올리는, 가장 익숙한 스타일이다. 볶지 않고 끓이니 제대로 이름 붙인다면 '떡탕'이나 '떡조림'이 더 정확할 듯하다. 떡볶이 양념이 고추장으로 바뀐 건 1953년쯤. 서울 신당동에서 떡볶이집을 하던 고(故) 마복림씨가 중국요리의 춘장에서 영감을 얻어 간장 대신 고추장을 넣은 것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부터였다.
떡볶이 3.0 버전은 쌀떡 대신 밀떡을 넣으면서 완성됐다. 밀가루를 쌀가루와 섞어 저렴하게 뽑은 가래떡이 고추장 양념과 만나 환상적인 '케미'를 만들었다. 맛있고 값도 싼 떡볶이 3.0은 전국 분식업계를 평정했다.
대부분 인식 못하지만, '떡볶이 4.0'이 이미 우리 곁에 왔다. 요즘 떡볶이를 먹어 보면 맵지만 예전처럼 텁텁하지 않고 가볍고 칼칼하다. 떡볶이 양념의 주재료가 고추장에서 고춧가루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형 대형 떡볶이업체에서 변화를 주도했다. 고추장에 들어있는 메줏가루와 찹쌀가루가 떡볶이 떡에서 나오는 전분과 만나면 소스가 걸쭉해지고 텁텁해질 뿐 아니라 금방 굳고 뭉친다.
대형 떡볶이업체들은 요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깔끔하게 매운 맛을 내기 위해 고추장을 뺐다. 대신 고춧가루를 배합해 사용한다. 국내 생산되는 고추는 재래종 '조선고추'와 외래종과 재래종을 교배한 '호고추'로 분류된다. 호고추는 매운맛이 약한 대신 단맛과 향이 강하고, 조선 고추는 은은하고 깊은 매운맛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떡볶이 업체는 호고춧가루와 설탕, 간장 등을 섞어 기본양념을 만든다. 여기에 조선고춧가루를 섞어 맵기와 빛깔을 조절한다. 고춧가루는 곱게 빻은 것을 쓴다. 가루의 입자가 작을수록 양념이 떡에 잘 배고, 씹어 삼킬 때 목 넘김이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떡볶이 5.0'은 언제 등장할까. 어떤 맛과 모양으로 진화할 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