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조던 사진전

깊은 슬픔으로 출렁이게 한다. 빨강 노랑 파랑 알록달록 플라스틱 병뚜껑은 '녹지 않는 독'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날개를 가진 알바트로스가 삼킨 뚜껑은, 그 새를 화석으로 만들었다.

플라스틱을 먹을수 밖에 없었을까. 아름다운 생명이 전하는 공포와 슬픔의 메시지는 참혹하기만 하다.

'정말 이럴수가 있을까?' 의심의 생각이 스칠때 그가 말했다.

"이 사진을 찍을때 조작하거나 플라스틱 뚜껑 위치를 바꾸지도 않았다. 포토샵도 안했다." 20일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만난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56)은 "이 작품은 우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했다.

실제로 플라스틱 오염은 심각하다. 바다 쓰레기섬의 90%가 플라스틱이라고 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16년 5월 펴낸 보고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2010년에만 최소 480만t에서 최대 1270만t이 바다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바보새'가 된 알바트로스. 8년간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을 오가며 그도 가장 힘들었던 건 인간인 우리가 아는 것을 알바트로스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쓰고 버린 쓰레기들을 먹이인 줄 알고 새끼의 입으로 건네주고, 궁극에는 그것이 자기 새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2009년 전 세계인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 이 사진은 그를 환경 사진가로 등극시켰다.

사진 작가 이전 미국 시애틀에서 10년간 변호사로 살았다. (1991년 텍사스 대학교 로스쿨 법학 박사를 취득했다)

"계획된 변호사의 안전한 생활이 공포로 다가왔다"는 그는 "그 직업을 그만두는 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이었다"고 했다. 주변에서 실패하면 변호사로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예술가의 길로 더 밀어붙였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변호사협회에 등록증과 라이센스도 반납했지만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가 주는 편안함보다 마음속의 공허함이 더 컸다.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하니까 훨씬 더 활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2009년 방문한 태평양 미드웨이 섬은 자석처럼 그를 끌여들었다. '플라스틱 쓰레기'같은 섬에서 8년간 머물며 알바트로스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를 담아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었다.

새를 위한 애도의 작업이었다. 가장 높이, 멀리, 오래 나는 새로 알려진 알바트로스는 바다환경의 오염으로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하고 쓰레기를 배에 가득 채운 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다큐 영화 '알바트로스(Albatross)'는 지난해 ‘런던 세계보건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인류와 자연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 균형을 찾는 것이 내 작업의 이유"라는 그는 "예술은 인간의 본질, 감정으로 이끈다"며 "예술의 역할은 인간의 치유에 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 저지른 거대한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자각몽'같다. 현실 같지 않은 작품이 의식을 뚜렷하게 해준다.

사진과 개념미술, 영화와 비디오아트를 통해 동시대 환경 이슈의 현장을 보여주는 크리스 조던의 한국 첫 개인전이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를 타이틀로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영상, 영화 등 64점을 전시한다.

경고나 고발로 드러낸 이전 '환경 사진'과 달리 '그림 같은 사진'으로 서정성이 감도는게 특징이다. 보는 순간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멀리서 언뜻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쌓이고 부딪히며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언뜻 보면 현대미술의 한 지향이라 할만한 모노크롬 회화 같기도 하다.

극도의 미니멀과 추상으로 형상화해 회화적이다. 검은 덩이와 사각 박스들, 하얀 평면과 푸른 선분들로 이뤄진 사진들은 산업폐기물과 쓸모를 다한 물건들, 리싸이클링을 기다리는 자재들로 이뤄졌다.

플라스틱의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자연의 모습과 유명 명화들을 이용한 친밀한 전략으로 전 세계의 공통 과제인 환경과 기후문제를 숙고하게 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등 명화를 플라스틱 물병과 뚜껑, 비닐로 재탄생시켰다.

예술가로서 미덕인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이미지들을 엮어서 만들어냈다. 버려진 신용카드, 우편물, 백열구등을 동그랗게 이어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둥근 수레바퀴처럼 이어져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는 '만다라'처럼 보여진다. 결국 인류는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떠나온 곳은 다르나 인류는 하나'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작가가 ‘슈마바’ 숲에 머물며 숲의 신령스러운 아름다움에 깊이 경도된 덕분이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다시 숲은 한 그루 나무에서 시작되듯 둥글게 순환하는 생태계의 경이로운 질서를 표상하고 싶었다.

작가의 생태윤리는 비디오 작업 ‘Mandala 432’와 ‘E Pluribus Unum’에서 더욱 고조된다. 끝없이 변이되는 프랙탈(fractal) 형상은 나의 영역에서 확장해서 주변의 생물과 그들의 서식지, 나아가 지구 전체 생태계로 뻗어가는 전일한 세계의식을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최연화 큐레이터는 " 크리스 조던이 프랙탈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예속하는 자본주의를 향한 욕망에서 좀 더 다른 차원의 욕망 즉, 생태계와의 관계맺음을 새롭게 제안하려는 것이다"며 "작가가 수 천, 수 만 장의 사진이미지를 모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펼쳐낸 것도 이미지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차원에 접속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더이상 "숲이 파괴되고 동물이 멸종되고 있다"고 환경보호 구호는 촌스럽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감정을 느낀다면 변화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생길 것"이라는 크리스 조던의 말처럼 그의 작품이 가슴을 울린다.

알바트로스의 아름다움과 슬픈 현실을 극적인 영상으로 포착한 그의 영화 '알바트로스Albatross'가 알려준다. 전시 개막일인 22일 오후 3시30분 크리스 조던이 사전 신청 관객과 함께하는 영화 상영회가 열린다. (영화는 전시기간 내내 볼수 있다.)

이 전시는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주최하고. 플랫폼C, 성곡미술관이 주관한다. 입장료 3000~8000원. 5월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