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테드 크루즈 공화당 의원과 로버트 메넨데스 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현지 시각) 한국 정부가 성급하게 대북 제재 완화에 나선다면 한국의 은행과 기업들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 편지를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이 14일 공개한 편지를 보면 두 의원은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를 이행하는 데 있어 한·미 간 공조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특히 남북, 미·북 간의 외교 트랙에서 서로 진전 정도가 다른 결과로 인해 한국 내 은행과 기업체들이 미국의 제재에 노출될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직접 지목하며 미국의 제재 법안 위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문 대통령이 작년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기업 총수들을 데려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정상화를 논의한 점, 강 장관이 개성공단에 현금 대신 현물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했던 발언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한국 은행들이 북한 투자 대책팀을 만든 사실 등을 지적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워싱턴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관계 발전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던 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비건 대표는 "부모가 자식을 야단칠 때 엄마 아빠가 딴소리를 하면 되겠느냐"고 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 다른 소리를 낸다는 불만을 에둘러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 의장은 "국회 방문단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던 미 조야의 분위기를 희망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자평했다. 얼굴을 맞댄 상태에선 덕담만 건네는 외교적인 태도를 상대의 진심인 양 착각한 것이다. 미 의회와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경고 메시지를 흘려들었다가는 우리 기업이나 은행들이 큰 봉변을 치를지도 모른다.